[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광주 ‘경기도자박물관’

흙·불·열정 결정체 도자기의 대서사시

조선시대 500년간 왕실용 도자기를 생산했던 관요가 자리했던 경기도 광주에건립된 경기도자박물관은 관요는 물론 경기도에 소재하는 초기청자 및 백자에서부터 근현대 도자에 이르기까지 관련한 유무형 자료의 수집, 보존, 연구, 전시를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경기도자박물관 전경. 윤원규 기자
조선시대 500년간 왕실용 도자기를 생산했던 관요가 자리했던 경기도 광주에건립된 경기도자박물관은 관요는 물론 경기도에 소재하는 초기청자 및 백자에서부터 근현대 도자에 이르기까지 관련한 유무형 자료의 수집, 보존, 연구, 전시를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경기도자박물관 전경. 윤원규 기자

 

비췻빛 고려청자나 순백의 조선백자 혹은 현대추상화를 방불케 하는 분청사기 이미지를 지긋이 바라보자. 그러면 지금 우리의 일상에서는 도무지 찾기 어려운 한국인의 ‘풍류정신’이라 할 멋과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도자기만큼 한국의 정서와 미를 담고 있는 유물이 달리 있을까. 밥그릇, 찻잔, 술병과 그 자체를 감상하는 현대의 관상용까지 도자기는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고 있다. 16세기까지 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보유한 나라는 조선과 중국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새삼 놀란다. 조선시대 최고의 도자 제품은 왕실에 납품하는 임무를 맡았던 사옹원 분원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경기도자박물관은 조선시대 500년간 왕실용 도자기를 생산했던 관요의 고장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백자와 분청사기가 중심이지만 고려청자는 물론 근 현대의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도자기 전체를 아우른 도자 전문박물관이다.

1층 도자문화실은 도자의 개념과 역사, 기법 등의 정보를 제공, 도자를 처음 접하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있다.윤원규 기자
1층 도자문화실은 도자의 개념과 역사, 기법 등의 정보를 제공, 도자를 처음 접하는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있다.윤원규 기자

 

■ 그릇 속에 깃든 한국의 미

경기도자박물관의 독특한 건물 디자인이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박물관 좌우에 있는 건물 모양도 재미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먼저 찾으면 좋은 곳은 박물관 1층 왼편에 도자문화실이다.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면 도자의 개념과 역사, 제작기법을 비롯해 도자에 관한 풍부한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영상, 모형, 현미경 등 시청각 매체를 함께 활용하여 도자에 관련된 유익한 정보를 흥미롭게 전달하는 공간이니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2층 상설전시실은 고려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소장품을 통해 한국도자기의 역사를 이해하도록 꾸며져 있다. 제1상설전시실은 고려와 조선의 도자기를 전시하는 곳으로 우리나라 자기문화의 발전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청자와 조선시대의 분청과 백자의 변천과정과 특징, 상감청자에서 분청으로 변화과정, 분청과 백자의 공존관계, 백자의 종류와 미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근현대 전통도자 상설전은 전통도자를 재현한 ‘전승도자’와 일부 ‘생활도자’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전통가구와 도자기의 어울림이 자연스럽고 멋스럽다는 당연한 사실에 빙긋 미소를 지을 것이다.

2층 상설전시실은 고려청자부터 조선의 분청과 백자의 변천과정을 살펴보고,이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담아낸 도자기의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윤원규 기자
2층 상설전시실은 고려청자부터 조선의 분청과 백자의 변천과정을 살펴보고,이를 통해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담아낸 도자기의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윤원규 기자

 

■ 조선 백자의 고장, 광주

조정에서 사옹원의 사기제작소인 분원(分院)을 경기도 광주에 설치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광주의 지리와 환경 때문이다. 광주는 수도 한양과 가깝고 한강의 뱃길로 백토와 자기를 운반하기 쉬우며, 산림이 울창한 무갑산과 앵자봉이 있어 가마에 사용할 땔나무를 구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분원은 약 10년 단위로 수목이 무성한 곳으로 옮겼다. 금사리에 있던 분원은 1752년(영조 28)에 분원리로 이전되면서 분원이 민영화되는 1883년까지 130년간 운영되었다. 이곳에서 순백자ㆍ상감백자ㆍ철화백자ㆍ청화백자와 분청사기 같은 다양한 도자기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미를 창조한 광주 분원도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지 못했다. 1884년 분원의 운영권이 민간에 넘어간 후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분원조차 백자를 생산하지 못했다. 값싸고 세련된 일본 도자기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선 도자의 유구한 전통은 단절되다시피 했다. 임진왜란에 이어 또다시 겪어야 했던 뼈아픈 역사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1945년부터 한국도자 문화를 재현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도자 예술에 뜻을 둔 사람들이 분원의 가마터가 가득한 광주를 비롯하여 이천과 여주 등지에 모여들어 수백 개의 가마를 세워 자유분방한 예술혼으로 분청사기와 백자를 창조한 조선 도공의 맥을 잇고 있다. 이러한 토대 위에 설립된 것이 한국도자재단의 경기도자박물관이다.

경기도는 한반도 중심으로 지리적 위치와 중국 교역의 요충지로써 도자문화를 꽃피웠다. 가평 하판리와 안성 화곡리에서 발굴된 17~18세기 조선시대에만들어진 도자 파편들.윤원규 기자
경기도는 한반도 중심으로 지리적 위치와 중국 교역의 요충지로써 도자문화를 꽃피웠다. 가평 하판리와 안성 화곡리에서 발굴된 17~18세기 조선시대에만들어진 도자 파편들.윤원규 기자

 

■ 근대 도자, 산업과 예술의 길에 서다

5월 22일부터 8월 30일까지 2020 기획전 <근대도자, 산업과 예술의 길에 서다>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도자 역사의 암흑기라 할 개항부터 일제강점기의 도자 산업을 당대의 유물과 기록을 통해 꼼꼼하게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큐레이터로 기획전을 연출한 김진영 학예사의 안내를 받으며 1876년 개항부터 조선말기와 대한제국기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의 근대시기에 생산되고 유통된 다양한 도자를 살펴볼 수 있었던 특별한 기회였다. 김 학예사는 이 시기의 작품을 주목하는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시기에 비로소 산업과 예술로서의 도자가 탄생되었습니다. 우리 근대 도자의 과도기적 양상을 이해해야 비로소 현대의 우리 도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1층 기획전시실에는 ‘근대도자 산업과 예술의 길에 서다’ 란 제목으로기획전이 진행되고 있다. 일제시대 이후 근대 도자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윤원규 기자
현재 1층 기획전시실에는 ‘근대도자 산업과 예술의 길에 서다’ 란 제목으로기획전이 진행되고 있다. 일제시대 이후 근대 도자의 변천사를 엿볼 수 있다.윤원규 기자

 

전시는 1부 ‘조선의 도자, 수공업에서 산업의 길로’와 2부 ‘제국주의 시대, 쓰임의 도자에서 창작의 도자로’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1876년 개항 이후 광주에 있던 사옹원 분원이 민영화되고 분원자기 주식회사로 이행되는 시기에 분원에서 제작된 도자의 근대화를 다룬다. 이 시기는 ‘왜사기’로 불리는 일본산 수입자기가 밀려들어 전통의 도자산업을 크게 위협했다. 도자산업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전봇대에 절연체로 사용된 도자애자와 대량으로 생산된 술독이나 석유의 수입으로 널리 보급된 등잔 같은 유물을 통해 근대로 진입한 한국사회의 생활상을 엿보는 것도 흥미롭다. 강원도 양구 칠전리, 전라도 장흥 월송리 등 지방 민수용 가마에서 전통 생산방식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자본과 선진 기술을 앞세운 일본인이 전통 가마를 계속 점유하여 일본식으로 개량하면서 지방의 가마까지 전통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나마 1940년대에 우리 자본으로 행남사, 밀양도자기 등 산업자기 회사들이 설립되었던 것은 주목되는 일이다. 현대 산업도자의 근간을 이루는 국내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들에 눈길이 쏠렸다.

2부 ‘제국주의 시대, 쓰임의 도자에서 창작의 도자로’는 20세기 제국주의의 풍파에 맞서 우리 장인들이 전통도자의 영광을 회복하고자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일본의 앞선 기술과 자본으로 재현해낸 청자가 창작도예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일본인들의 불법 도굴과 발굴로 세상에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낸 고려청자는 일본인에게 탐욕과 열광의 대상이었다.

18세기 조선시대에 제작된 백화청자 운룡문 항아리. 역동적인 용의 몸짓이 돋보인다.윤원규 기자
18세기 조선시대에 제작된 백화청자 운룡문 항아리. 역동적인 용의 몸짓이 돋보인다.윤원규 기자

 

이 시기에 왕실에서도 민족문화의 진작을 위해 조선미술품제작소, 이왕직미술품제작소를 운영했으나 시대적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일본자본에 잠식되고 말았다. 게다가 일본자본으로 설립된 재현청자 요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주 고객인 일본인의 취향에 맞추어 청자의 전통을 왜곡시켰다. 삼화고려소, 한양고려소에서 생산된 고급 재현청자는 기념품 혹은 창작품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도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이때 생겨났다. 이 시기에 고려청자 재현에 몸담았던 유근형, 황인춘 같은 사람들은 이후 조선미술품전람회에서 이어진 대학의 도예교육과 함께 해방 후 한국도예를 이끈 주축이 되었다. 또 하나 특별한 사실은 도자산업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지사들의 활발한 움직임이다. 31운동에 민족대표로 참여한 백용성 선사(1964~1940)가 함양에 생활용 백자를 생산한 일이나 이승훈 선생(1964~1930)이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 설립에 관여한 일, 경기도 광주 출신의 몽양 여운형선생(1886~1947)이 분원 사기를 개량하기 위해 광주에 사기회사 설립을 추진했던 일도 한국도자기 역사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할 소중한 역사다.

안타깝게도 코로나19로 인해 기획전을 관람하기 어렵게 되었다. 대신 한국도자재단 홈페이지를 접속하면 3D뷰어를 통해 전시를 감상할 수 있다. 현장 관람은 개인에 한해서만 가능하며 박물관 관람이 완전 정상화될 때까지 입장료는 무료다. 단체예약 및 전시해설, 연계교육 같은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당분간 운영하지 않는다고 하니 박물관을 찾기 전에 미리 전화로 확인하기 바란다. 박물관 옆에 산책하기 좋은 야외 조각공원이 있고, 광주 지역 도예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광주왕실도자기판매관도 구경할 만하다.

■ 분원백자자료관과 이천세계도자센터

경기도자박물관을 모두 둘러봤다면 인근에 자리한 분원백자자료관(광주분원)도 찾아보기를 권한다. 분원백자자료관은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는 최고급 백자를 생산했던 분원리 가마터에 조성되어 있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사옹원 분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내친김에 이천세계도자센터(이천세라피아)와 여주세계생활도자관(여주도자세상)도 함께 둘러보면 좋을 것이다. 무릇 예술작품을 보는 안목을 갖추고 재미있게 감상하려면 많이 봐야 한다.

김준영 (다사리행복학교 행복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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