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슬리퍼
김영주
바르게 신어도 짝짝이로 보이고
고쳐서 신어도 짝짝이로 보인다
고것 참 희한하게도
벗어놓으면 맞다
욕실 슬리퍼는 대체로 오른쪽 왼쪽이 분명하지 않다. 오른쪽인가 싶어서 신어 보면 왼쪽인 걸로 보이고, 왼쪽인가 싶어서 신어 보면 오른쪽인 걸로 보인다. 왜 욕실 슬리퍼는 이처럼 불분명하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짐작건대, 실내화인 만큼 수월하게 신으라고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한 세상을 살다 보면 굳이 오른쪽, 왼쪽을 따지지 않아도 좋은 경우가 참 많다. 오른쪽이면 어떻고, 왼쪽이면 어떤가. 그냥 신발이면 좋듯이 굳이 따지지 않아서 좋은 게 많다. 오히려 명확하게 한다고 하다 보면 편을 가르게 되고 심하면 적을 만드는 경우도 생긴다. ‘고것 참 희한하게도/벗어놓으면 맞다’. 이 동시의 백미다. 벗어놓으면 맞는 걸 가지고 굳이 오른쪽이니 왼쪽이니 할 것까지야 없잖은가. 시인이 하고 싶은 말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찮아 보이는 욕실 실내화를 그냥 지나치지 않은 시인의 눈이 요런 동시를 낳았다. 문학은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달아주는 일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상의 흔한 것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끌어안는 일이다. 여기에 ‘재미’를 넣어주는 일이 중요하다. 시나 소설이 재미없다고 한다면 누가 읽어줄 것인가.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동시라면 더더욱 재미있어야 할 것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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