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세상 아이들 세상… 상상의 나래 ‘활짝’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어린이가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하고 기발하며 특별한 존재인지를. 아이는 서너 살만 되면 방바닥과 벽은 물론 냉장고나 소파에도 그림을 그려대는 미술가다. 그러나 샘솟던 호기심과 반짝이던 예술적 재능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물론 그 책임은 부모와 교사를 비롯한 어른들과 낡은 제도를 고집하는 국가에 물어야 한다. 입시와 취업을 향해 설계된 한국 교육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어른들은 여전히 아이들의 호기심과 재능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교육이라 착각하고 있다. 아이들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도 정보와 재미를 일방적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한국 교육과 닮은꼴이다. 놀이터도 찾지 않은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일방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전달받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을 닫힌 공간인 학교ㆍ학원,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서 벗어나 타인과 소통하고 사물과도 소통하는 특별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성남시 판교에 ‘책’을 주제로 한 어린이 미술관이 있다. 현대어린이책미술관(애칭 MOKA, 관장 노정민)은 지역사회 공헌과 문화예술 지원을 위해 현대백화점이 설립한 문화교육공간이다. 노 관장은 “그림책을 통해 어린이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스토리에 담긴 의미와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다양하고 흥미롭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 소개한다.
■말도 안 되는 것을 현실로
현재 미술관에서는 <말도 안 돼! No Way!>라는 기회전이 열리고 있다. 이 기획전을 설계한 박수민 학예사는 ‘건축가는 예술가인 동시에 엔지니어이자 철학자이다’라는 말을 소개하며 기획전을 구상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건축물들을 짓기 위해 건축가들은 어떤 기발한 생각을 했을까?” 이 질문을 동행한 아이와 자신에게 던지면서 전시실을 둘러볼 일이다. 전시실에서 처음 만나는 인물은 벽 없이 기둥만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필로티(Piloti) 구조를 제창한 르 코르뷔지에(1887~1965)인데 그는 시대적 경향을 훌쩍 앞질러 간 프랑스 건축가이다. 두 번째는 끈과 추를 거꾸로 매달아 만든 ‘푸니쿨라 모형 실험’을 통해 대성당의 아치와 기둥을 세우는 건축법을 완성한 안토니 가우디(1852~1926)다. 그가 설계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벽과 바닥, 천정이 연결되어 물이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비정형’ 건축을 선보인 자하 하디드(1950~2016)라는 이라크 출신의 여성이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를 설계하여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처럼 현대 건축의 역사를 새롭게 쓴 세계적인 건축가 세 사람의 놀라운 생각과 그 생각을 건축에 담은 작품을 감상하면 큐레이터 박수민씨의 의도처럼 “말도 안 돼!”라고 생각됐던 일들을 가능케 만든 인간의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아치, 다리, 마천루
아치, 다리, 마천루라는 세 가지 건축 요소를 질문과 함께 표현한 해외 작가들의 그림책 원화도 전시하고 있다. 첫 번째 주제는 ‘화려하고 웅장하게 만들어 볼까?’인데, 소재가 ‘아치’이다. 데이비드 맥컬레이 작가의 <고딕성당 Cathedral>은 실제 건축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과 건축의 원리를 담고 있다. 어느 날 벼락이 떨어져 무너진 성당을 프랑스에서 가장 높고, 가장 아름다운 ‘쉬트로 대성당’으로 짓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건축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주제는 ‘더 먼 곳까지 연결할 수 있을까?’이고 소재는 ‘다리’이다. 데이비드 로버츠의 그림책 <꼬마 건축가 이기 펙>은 건축의 원리를 이용해 어려움에 빠진 상황을 재치 있게 극복하는 아이 이기 펙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저귀로 타워를 만들고, 사과와 복숭아를 쌓아 교회를 만들며 건축을 놀이처럼 생각하는 이기 펙은 친구들과 함께 강을 건너가기 위해 나뭇가지부터 신발끈, 자 등을 이어 ‘다리’를 완성한다. 세 번째 주제는 ‘아주아주 높게 세워 볼까?’인데, 소재가 ‘마천루’이다. 디디에 코르니유의 <높이 솟은 마천루에 올라요>는 하늘에 닿은 듯 높은 마천루를 튼튼하면서도 아름답게 건설하려 했던 건축가의 고민과 노력을 그려낸 그림책이다. 건축 도면을 그려내듯 건축가의 재미있는 생각과 신기한 건축 원리까지 읽어낼 수 있다.
■건축가들의 놀라운 상상력 비밀
르 코르뷔지에, 안토니 가우디, 자하 하디드 건축의 특징과 건축의 원리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연계활동도 마련되어 있다. 르 코르뷔지에가 만들었던 것처럼 어린이들이 직접 자신만의 옥상 정원을 상상하고 종이와 색연필 등으로 만들어 볼 수 있다. 가우디가 천장에 줄과 추를 매달아 모형을 거꾸로 만든 다음 바닥 거울에 비춰 영감을 받았던 것처럼 거꾸로 건축 모형을 만들어 거울에 비춰보는 것도 즐겁다. 유선형의 건축물을 디자인한 자하 하디드의 자유로운 발상을 따라 종이 띠를 이용해 부드러운 건축물을 재현해 볼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다양한 건축 재료와 도구를 만지면서 각 재료의 사용 목적과 기능을 탐구해 볼 수도 있다. 건축가가 건물을 짓기 전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종이에 스케치할 때 사용하는 연필과 지우개, 삼각자 같은 도구와 나무와 석재, 금속, 플라스틱 등의 건축 재료들을 손으로 만지고 직접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건축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2전시실에 마련된 ‘건축의 몸 상상 실험실’은 건축가와 함께 구성한 것으로 어린이들이 건축에 관한 사고와 상상을 더욱 쉽게 접근해 볼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터널처럼 둥글고 길게 펼쳐진 벽, 구멍을 뚫고 나온 듯한 선반 위에 신기한 집 모형들이 있다. 모형을 하나씩 관찰하며 걷다 보면 ‘건축 실험실’ 입구에 도착한다. 실험실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무중력의 우주에 들어선 것 같은 백색 소음이 흘러나오고, 곧 벽 전체가 거울로 둘러싸인 상상의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이곳에서는 구름 위에 걸린 집, 폭신폭신한 정전기의 집,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집 등 6개의 집 모형들을 관찰하면서 건축의 재료와 건축의 형태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 실험을 하게 된다. 모형들은 ‘우리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과연 말도 안 되기만 한 건축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건축 재료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거울 벽에 붙어보며 자신의 몸 자체가 건축물이 되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소통의 통로, 책미술관
책미술관 MOKA의 건축은 미술관의 새로운 공간 유형을 보여준다. 앉아서 쉬고 책을 볼 수 있는 징검다리 모양의 계단인 ‘버블 스텝’과 거대한 기둥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통로인 ‘램프’는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미술관의 심장이라 할 ‘열린서재’에는 6천여 권의 그림책이 소장되어 있는데 ‘조각조각 이야기, 울퉁불퉁 이야기, 진짜 같은 이야기, 춤추는 이야기, 간질간질 이야기’ 같은 75개의 주제어로 그림책을 분류하여 흥미를 끌어낸다. 서재에는 북마스터(담당 백지연)가 친절하게 도움을 준다. 도서관 옆으로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종이접기 형식을 닮은 널찍한 교육 공간이 연결된다.
“그림책은 어린이들이 태어나 가장 처음 접하는 예술이자 풍요로운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문학이며 다양한 세상과 만나는 경험을 선사한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그림책은 어린이가 세상과 소통하는 문이며 다름을 이해하는 통로이자 사람의 감성을 어루만지는 작은 미술관이기도 하다. 그림책의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이다. 내면을 어루만지는 글귀와 자연을 닮은 선과 색깔, 그리고 바람처럼 자유로운 상상이 가득한 그림책은 우리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어른도 그림책을 펼치면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아이를 만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고 지금의 내 아이를 조금 더 이해하며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신분당선 판교역에서 걸어 5분 거리에 있는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아이와 부모, 세대 간의 차이를 뛰어넘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 주는 도심의 허파와 같은 공간이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는 미술관 입장료는 아동, 성인 모두 6천원이다. 자가용이면 백화점 주차장을 2시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사진=윤원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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