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아톰 할배’들, 국회에 호소하다

우리나라 원자력 연구의 1세대들로 생존해 있는 다섯 분의 과학자가 있다. 원자력 연구원장을 지낸 장인순 박사, 원자력 건설처장 출신의 전재풍 박사, 영광 3ㆍ4호기 설계책임을 졌던 김병구 박사, 원자력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었던 이재설 박사, 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박현수 박사 등이 그들이다. 모두 80대이거나 70대 후반의 소위 ‘할배’들이다. ‘할배’이지만 ‘아톰’, 즉 원자력과 함께 일생을 보낸 분들이라 하여 ‘아톰 할배’라는 애칭이 붙여진 것이다. 물론 1세대 ‘연구원 사람’들 가운데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다.

그 가운데 한필순 박사는 원자력계의 전설적 인물.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원자력’이라는 이름도 꺼내기 어려웠던 시절에 연구원들을 토닥이며 원자력의 꿈을 살려 냈다. 특히 그는 1986년 12월14일 연구원들을 미국 컴버스천 기술 회사에 파견하면서 ‘어떻게든 원전기술을 배워라. 그렇지 않으면 돌아올 생각하지 마라’며 뜨거운 사명감을 불어 넣은 일화로 유명하다. 그 미국 회사는 우리나라의 영광 원자력발전소 3·4호기의 원자로 계통설계를 맡았던 곳인데 우리 연구원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에까지 기술 습득을 터득하고 귀국해 탄생시킨 것이 한국형 원자로이다. 1987년의 중수로용, 1989년 경수로용 국산화 성공, 이렇게 원자력 기술식민지에서 독립해 해외까지 수출하는 원자력 최강국이 되는 데는 이런 ‘아톰 할배’들의 땀과 고통이 있었다. 원자력연구원장 출신의 장인순 박사는 초창기 부품이 없어 서울 청계천 상가를 수없이 들락거렸다. 그곳에 가면 박격포까지도 구할 수 있을 만큼 온갖 장비들이 거래됐다. 그래서 장 박사는 서울시가 청계천 상가를 철거할 때 그곳에 ‘조국근대화 공적비’라도 세워 놓자고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건의할 정도였다. 장 박사는 원자력연구원장에 취임하자 연구원 건물 옥상에 국기를 달았는데 그 국기가 국내 공공기관의 게양 국기 중에는 제일 크다. 지금도 그 큰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원자력 연구에 임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원자력연구에 일생을 쏟은 다섯 과학자가 지난해 한필순 박사 5주기를 맞아,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라는 책을 발간했다. 특히 지난해는 10년 전 아랍 에미리트(UAE)에 첫 한국형 원자로가 수출한 날을 기념해 만든 ‘원자력의 날’ 행사가 정부의 탈 원전정책 분위기에 제대로 기념식도 못한 상황에서 책이 나왔다.

책의 내용은 탈원전에 반대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이들 ‘아톰 할배’들은 21대 국회가 개원되자 다시 국회의원들에게 탈원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호소문을 작성했다. 발전 단가를 보면 원자력 60원, LNG 120원, 태양광 180원으로 경제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3가지 원자로를 수출하는 우리나라가 이를 포기하면 제일 기뻐할 나라는 중국 등 경쟁국이 아니겠느냐고 이들 원로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특히 이들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경험한 러시아, 미국, 일본이 왜 탈원전을 하지 않고 계속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고 있는지도 생각하라고 촉구했다. 사실 하루에 태양광 발전시설로 축구장 10개의 숲이 사라지는가 하면 석탄 등 화석발전의 환경파괴가 심각한 상황이다. 그리고 7천억 원을 들여 월성 1호기를 보수까지 했음에도 이를 폐쇄하는 등 이해 못할 탈원전 정책에 회의를 가진 시점에 ‘아톰 할배’들이 국회에 보내는 호소문은 깊이 새겨 볼 필요가 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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