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과 도민을 잇는 ‘소통의 가교’
“아, 아깝다!” 경기도미술관 벽면에 걸린 ‘동시대 미술의 현장, 우리와 당신들’과 ‘그림, 그리다’라는 두 개의 전시회를 알리는 현수막을 바라보다 절로 터져 나온 탄식이다. 코로나19로 이처럼 정성을 기울여 마련한 수준 높은 전시를 관객들이 관람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미술관의 협조를 받아 2층에 전시된 다양한 작품을 관람하면서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현대 미술에 대한 선입견을 훌훌 벗어던지게 된 것은 기대 이상의 수확이다. 물론 그것은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최혜경, 이수영 두 분의 친절한 안내와 해설 덕분이다.
“아! 저 까마귀를 보라. 그 깃털보다 더 검은 것이 없건만, 홀연 젖빛 금색이 번지기도 하고 다시 공작석의 빛을 발하기도 한다. 해가 비치면 자주색이 튀어 올라, 눈에 어른거리다가 비취색으로 바뀐다. 그렇다면 내가 그 새를 ‘푸른 까마귀’라 불러도 될 것이고, ‘붉은 까마귀’라 불러도 될 것이다. 그 새에게는 본래 일정한 색이 없는데도, 내가 눈으로 그 색깔을 정한 것이다. 어찌 단지 눈으로만 정했을까, 보지 않고서 먼저 마음속으로 정해 버린 것이다.”
‘선입견을 버리라’는 연암 박지원의 조언은 우리가 현대미술과 마주할 할 때 꼭 기억해야 할 말이다. 모든 예술적 성취는 이처럼 대상을 생명체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잘 알고 있겠지만, 연암과 동시대를 살았던 조선의 위대한 화가 단원 김홍도가 안산 사람이기 때문에 경기도미술관이 안산시 단원구에 세워지게 되었다.
2006년 10월에 개관한 경기도미술관의 영문명은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이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모던’이다. ‘초현실주의’니 ‘팝아트’니 하는 용어에서 풍기듯 현대미술은 전통적인 방식에 대한 저항과 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낯설고 어렵다. 현대미술에 대한 평범한 관객들의 보편적인 선입견은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과 마주해 있다. 그러나 이처럼 막연한 두려움은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하나 둘 사라지기 마련이다.
■ 상설전시 : 그림, 그리다
경기도미술관(관장 안미희)에서는 현재 두 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하나는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을 기반으로 기획한 ‘그림, 그리다’전이 11월 29일까지 열린다. 박물관 학예팀의 최혜경 큐레이터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회화’를 주제로 ‘사물(정물화), 사람(인물화), 순간(풍경화), 행위’를 주제어로 전시를 구성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를 비롯한 클래식 선율이 귀를 즐겁게 한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전시하는 그림의 주제에 어울리는 곡을 추천한 것인데,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다. 아울러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디지털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경험해 볼 수도 있다. 미술관을 찾기 전에 네 가지 키워드를 먼저 살펴보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물: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들은 모두 그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물을 대상으로 그린 정물화는 17세기에 들어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독립된 화제가 되었다. 이명미·정희민 작가의 정물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사람: 사람은 그림의 중심 소재이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의 미술은 모두 사람이 주제였다. 정정엽·이동기 작가의 사람을 그림의 대상으로 화폭에 담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순간: 찰나의 아름다운 자연과 작가의 눈과 손의 만남은 감상자들에게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정직성·공성훈·빈우혁 작가가 표현한 순간을 감상할 수 있다.
행위: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순간순간의 결정들과 겹겹이 쌓아올리는 겹의 축적이다. 그러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행위로서 보여주는 작업들이 있다. 하종현·박경률·안지산의 행위를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다.
네 개의 주제마다 관람객에게 던지는 질문의 답을 생각하다 보면 현대미술을 보는 시야가 열릴 것 같다. 사물-작가의 시선을 통해 자유롭게 해석된 정물들이 화면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살펴보자. 사람-전통적인 그림의 주제인 사람이 현대 화가들의 눈과 손을 거쳐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살펴보자. 순간-작가들이 느낀 색채와 다양한 표현법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는 순간들을 고요히 살펴보자. 작가들의 그 순간들로 우리도 함께 떠나보자. 행위-작가들의 움직임을 떠올려보면서 행위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 기획전: 우리와 당신들
아시아 5개국의 13명의 작가가 참여한 기획전 ‘우리와 당신들’전이 8월 30일까지 열린다. ‘우리와 당신들’전을 기획한 이수영 큐레이터는 “이 기획전은 ‘우리, 인간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다양한 지역에서 자란, 다양한 세대의 작가들은 세계를 구성해 온 보편적 기준들이 무너지고 있으며 세계가 더 이상 진보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작가들은 인종, 젠더, 문화의 차이를 넘어 인간과 비-인간이 기술을 매개로 공존하는 다양한 세계를 작품으로 제시한다. 이처럼 ‘우리와 당신들’전은 역사와 관습에 묶인 공동체를 넘어서, 다양한 이웃들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가능성을 미술관으로 불러들여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홍콩관에서 전시되어 호평을 받았던 삼손 영(홍콩)의 ‘위 아 더 월드’, 여성의 문제를 페미니즘의 틀을 넘어서서 바라보고자 하는 소니아 쿠라나(인도)의 ‘드러눕다/새의 논리’, 미래의 AI를 태양의 모습으로 구현한 이장원의 ‘윌슨’, 공유지를 상징하는 구조물 안에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전진경의 ‘마당의 실내’를 비롯해 권병준, 김규호, 노진아, 심학철, 아크로바틱 코스모스, 아트 레이버, 이우성, 파트타임스위트, 황연주의 사진, 조각, 영상, 설치 등 총 32점이 전시되고 있다.
■ 경기도미술관에서 만나자
“현대 미술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미술을 즐기려면 현대 미술에 관심을 갖고 기본 정보를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현대 미술은 너무 어렵다 하는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작품은 결국 내 주변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현대미술을 이해할까라는 필자의 우문에 대한 안미희 관장의 현답이다. 그렇다. 일단 문을 두드려야 문을 열 수 있고, 발을 들여놓아야 새로운 것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역사가 15년이 된 경기도미술관만큼 인프라를 구축한 미술관은 없을 것입니다. 내실을 기하기 위해 아카이브 구축하면서 계속 연구하고 공부하며 도립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나갈 것입니다.”
미술관 곁에 자리 잡은 연꽃 가득한 화랑저수지를 산책하거나 숲으로 조성된 산책로도 훌륭하다. 멋진 조각 작품이 곳곳에 서 있는 야외 공간도 전시관 못지않게 잘 꾸며져 있으니 미술관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필수 코스다. 아울러 경기도미술관 가까운 곳에 김홍도를 기념하는 단원미술관이 있으니 함께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경기도미술관 지붕에 “경기도미술관에서 만나자…”라는 글자판이 있다. 머잖아 코로나19도 지나갈 것이다. 경기도미술관을 좋은 사람들과의 약속 장소로 예약하면 어떨까. 홀로 찾아가 시대를 성찰하는 작품과 마주하여 작가와 말 없는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코로나19로 관객들이 직접 미술관을 찾기 어려운 뜻밖의 상황을 맞아 경기도미술관은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인터넷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우선 경기도미술관 홈페이지를 접속해 보자. 두세 번만 클릭하면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 전시기획에 대한 이야기, 전시장의 공간 구성. 작가와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경기도미술관은 당신 곁에 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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