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철심

철심

                  - 고영민

유골을 받으러

식구들은 수골실로 모였다

철심이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분쇄사가 물었다

오빠 어릴 때 경운기에서 떨어져

다리 수술했잖아, 엄마

엄마 또 운다

영영 타지 않고 남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분쇄사는 천천히

철심을 골라냈다

《봄의 정치》, 창비, 2019

선가(禪家)의 화두 100칙을 수록한 『벽암록』(안동림 역주, 현암사)의 27칙에 ‘체로금풍’(體露金風)이란 말이 나온다. 이 말이 나온 배경은 이렇다. 한 중이 운문 선사를 찾아와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묻자 운문선사는 지체 없이 “나무는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천지에 가을 바람만 가득하지.”라고 답했다. 나무의 몸을 가렸던 무수한 잎이 가을 바람(金風)에 다 지고 본래 모습을 드러냄(體露)을 뜻하는 ‘체로동풍’은 꾸밈이나 가식이 없는 참모습의 사태가 무엇인지 확연히 보여준다. ‘교언영색’의 치장을 멀리하고 ‘불립문자’의 간결에 몰두하는 것이 선사들의 수행인 것처럼 표현의 절제를 통해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것이 시인들의 시 쓰기일 것이다. 그렇지만 표현의 절제란 쉽지 않다. 표현은 유혹이고 욕망이기에 그렇다.

고영민 시인의 시 ?철심?은 ‘체로동풍’의 사태처럼 말의 군더더기가 없어 전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다. 쉽게 읽히지만 울림의 폭은 크고 무겁다. 이는 표현의 절제에서 오는 시적 성취의 결과다. “철심이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라는 분쇄사의 간결한 물음은 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산 자들의 슬픔에 모진 파문을 일으킨다. 다리에 철심을 박고 살아온 한 생의 사연이 분쇄되면서 남긴 저 차가운 금속의 흔적 앞에 또다시 울음을 머금어야 하는 엄마와 형제들의 마음은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언어로 드러낼 수 없는 그 심정의 아득함을 시인은 ‘철심’이라는 이미지로 다 드러낸다. 여기에 선가의 화두(話頭) 같은 “영영 타지 않고 남는 게 있다면/어떤 것이 있을까?”라는 물음이 겹쳐지면서 시 「철심」은 화자와 가족은 물론 독자들의 가슴에 영영 타지 않을 ‘철심’ 하나를 박아 놓는다.

영영 타지 않고 남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자만이 삶과 죽음의 참모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나뭇잎 다 떨구고 본래 면목을 드러내는 가을 나무는 앙상한 것이 아니라 견고한 것이리라. 견고한 것은 고귀하고, 고귀한 것은 영원히 남는다. 고영민 시인의 ‘철심’의 이미지는 슬프지만 견고하다. 그래서 깊은 울림을 전한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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