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 번복, 수사 강압 ‘재탕’
法 ‘오류 인정, 수표는 유죄’
‘수표 해명’ 납득 되게 해야
한 방송사가 있다. 2010년 12월20일, 이렇게 보도했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재판에서 돈을 줬다는 한만호 한신건영 대표가 오늘 증인신문에서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진술이 번복돼도 유죄 입증에 자신있다는 검찰 입장도 강조해 전했다. 2011년 3월8일, 이렇게 보도했다. “한씨의 동료 수감자가…(한씨가) 광복절 특사가 무산되면 진술을 번복하겠다고 공언했다고 증언했다.” 한씨가 공판 전 내용을 달달 외웠다고도 보도했다.
이 방송이 지난 5월22일 이런 보도를 한다. “…그 후로부터 만들어진 (9억원)스토리는 검찰과 저희가 만들어낸 시나리오예요.” 고(故) 한만호씨 육성이다. 2011년 6월12일 인터뷰다. 한 전 총리에 유리했을 기사다. 당시엔 보도하지 않았다. 9년이 지나서야 보도했다. 앵커가 이유를 설명한다. “시일은 좀 됐다. 9년 전 인터뷰인데. 이 시점에 시의성을 갖게 됐다.” 하기야 여기만 그랬겠나. 대개 언론이 그랬다. 그땐 저쪽 얘기, 이땐 이쪽 얘기를 쓴다.
한 전 총리 사건으로 뜨겁다. 이번엔 ‘엉터리 수사였다’고들 쓴다. 관련자 증언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한만호 비망록, 죄수 H씨 발언, 최모씨 발언…. 사실 새로울 것도 없다. 9년 전에도 같은 주장은 있었다. 한 전 총리는 ‘돈 안 받았다’고 했다. 한만호씨는 ‘돈 안 줬다’고 했다. 검찰은 ‘진술 바뀌어도 유죄다’라고 했다. 한만호 비망록도 비슷한 내용이다. ‘회유 받고, 압박받았다’. 다만, 유고(遺稿)의 비장함이 더해졌다. ‘나는 검찰의 개였다’….
들여다보면 핵심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다. 1억원 수표다. 한만호씨에서 출발했다. 한 전 총리 비서가 받았다. 한 전 총리 동생이 사용했다. 흐름에는 이견이 없다. 설명이 다를 뿐이다. 한 전 총리는 받지 않았다고 했다. 동생이 빌린 돈이라고 했다. 검찰은 국무총리를 보고 건넨 돈이라고 했다. 금품 수수에서 수표는 중요한 증빙이다. 종종 ‘스모킹 건’이 되곤 한다. 검찰이 ‘진술 번복 상관없다’고 했던 이유다. 실제로 그랬다. 여기서 유무죄가 갈렸다.
대법원 판결은 징역 2년이다. 9억원을 불법 정치자금으로 봤다. 협의 과정에서 논쟁이 있었다. 유죄 범위에 대한 이견이다. 5명의 대법관은 수표와 함께 움직인 3억원만 유죄로 봤다. 사건 주심인 이상훈 대법관이 이 의견이었다. 8명의 대법관은 9억원 전체를 유죄로 봤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 의견이었다. 쟁점은 유죄ㆍ무죄가 아니다. ‘9억원 전부 유죄’냐, ‘3억원만 유죄’냐였다. 수표로 오간 3억원엔 이견이 없었다. 대법관 13명 모두 유죄라 했다.
꽤 중요한 구절도 나온다. 수사 과오에 대한 지적이다. 이상훈 대법관 쪽 논리에 등장한다. -7개월 넘는 기간 수십 차례 조사를 받았다. 1회 진술조서와 5회 진술조서만 있다. 나머지는 어떤 조사를 받고 어떤 진술을 했는지 자료가 없다. 증거 수집 과정이 수사의 정형적 행태를 벗어났다-. 이를 이유로 6억원에 대한 증거 능력을 부정했다. 협박 회유 수사라 본 것이다. 검찰엔 뼈아픈 지적이다. 하지만, 수표 3억원은 아니었다. ‘객관적 증거 있으니 인정.’
그 수표를 해명해야 한다. 그래야 무죄다. 그런데 언급이 없다. 온통 검찰 수사 얘기다. 아마 이렇게 가려는가 싶다. ‘검찰 오류 고백→재심 청구→재판 무효.’ ‘수사가 불법이니 판결은 자동 무효’라는 논리다. 수표는 굳이 따질 필요가 없어진다. 대법관 13명 판단이 통째로 사라지게 된다. 사법부에 너무 모욕적이지 않겠나. 감옥 간 양승태야 사법 농단이라고 한 번 더 몬다고 치자. 수사 오류까지 찾아냈던 대법관 5명의 판단도 적폐로 몰고 갈 건가.
한 전 총리가 억울할 수 있다. 무죄 번복이 정의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설명이 필요하다는 거다. 흐름이 훤한 수표 아닌가. 업자가 주고, 비서가 받고, 동생이 썼다. 빌렸다면 무죄인가.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하나. 유죄라고 보는 국민도 얼마든지 있다. ‘한명숙 양심의 법정’이야 진즉 끝난 판결이다. 그 스스로 ‘나는 무죄’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이건 ‘국민 상식의 법정’이다.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고, 국민을 납득시킬 책임이 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무죄다!’ 보름 넘게 나라를 덮고 있는 구호. 이를 들을수록 커져가는 생각이 있다. -새로운 것 별로 없고, 설명된 것 하나 없고, 납득된 것 전혀 없다. 그런데도 무죄로 갈 것 같기는 하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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