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계절의 여왕 오월에, 잠시 쉬며 스스로를 돌아보자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오월에는 봄이 무르익어 온갖 생명이 피어나고 온갖 꽃들이 만발하며 온갖 색깔이 드러나는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월에는 날씨가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모든 달이 다 나름 좋기는 하지만 특히 오월은 여러 면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올해 우리는 이런 계절의 여왕 오월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오월은 시끄러운 세상일과는 상관없는 듯이 아니 오히려 더욱 맑고 깨끗한 하늘을 이고 온갖 색깔이 꽃들이 피고 지고 있다. 그렇게 무심히 오월은 자신을 뽐내며 왔다가 또 무심히 가고 있다. 세상이 시끄러운 때에는 조용히 집에 앉아 오월을 즐기며 자신을 돌아볼 더욱 좋은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하고 싶다.

『장자』의 「변무」편에서는 어떤 일에 열정을 다하며 목숨을 바치거나 본성을 상하게 하는 일은 모두 어리석은 것으로 본다. 중요한 건 자신이다. 이곳에서 자신과 관계된 자득(自得), 자문(自聞) 그리고 자견(自見)을 강조한다. 나는 이 가운데, ‘자견’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견(自見)이란 ‘스스로 본다’는 뜻이다. 즉 “외부 색깔에 정신을 빼앗기는 일 없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본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것이 ‘눈 밝음(明)’이라는 것이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가장 기본적인 표준색은 파랑, 빨강, 노랑, 검정, 하양의 다섯 가지다. 우리 눈이 이 다섯 색의 기본 범주를 배우고 나면, 색들을 이 범주로 단순화해 생각하게 된다. 그다음, 이 다섯 색을 어지럽히고 화려한 무늬로 조작하며 눈을 끌어 혹하게 한다. 천연의 많은 색을 다섯 가지로 범주화해 설명하는 것은 한편으로 편리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조작해 다시 화려하게 꾸미면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때론 예술적이고 창조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실제 자연 세계에 펼쳐진 천연의 많은 색을 다섯 색으로 단순화하여 환원할 필요가 있을까. 혹은 거꾸로 이 다섯의 기본색들을 섞어 어지럽고 화려하게 조작하여 일부러 우리의 눈길을 끌어야 할까.

수많은 색은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이다. 그 스스로 그렇게 보이는 색을 그 스스로 있는 그대로 보면 그뿐 아닌가? 『장자』에서는 인위적 조작을 멀리하라고 한다. 실제 자연 세계에 펼쳐진 수많은 색깔은 있는 그 자체로 나타나고, 또 스스로 기분에 따라 그 색깔은 그때마다 늘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다섯 색깔의 기본 범주로 환원해서 보게 되면서, 혹은 이것을 어지럽거나 화려하게 조작해 봄으로써,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뿐만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나도 없게 되는 것이 주목한다.

세상 일이 그렇다. 자세히 봐도 문제고, 대충 봐도 문제다. 나는 ‘스스로 주체적인 눈으로 보고, 또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이 학문의 기본이라고 배웠다. 이것은 서구 근대 학문의 기본적인 훈련이다. 또 『논어』의 「자장」편에서는 “넓게 배우고 뜻을 돈독하게 하라. 절실히 묻고 가까운 데서부터 생각하라. 그러면 자연스레 그 안에 인(仁)이 있다”고 한 전통과도 얼추 비슷하다. 그런데 장자 입장에서는 이것들 모두 인위적이고 조작적일 뿐이라고 넌지시 혹은 혹독하게 비판한다. 그는 그저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할 것이다. 조금 더 방법을 이야기하자면, 지나치게 밝은 눈은 눈을 조금 더 감고, 지나치게 감은 눈은 조금 더 떠야 하는 정도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계절의 여왕 오월은 우리에게 그저 왔다. 그저 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지친 눈을 잠시 감고 잠시 쉬자. 귀도 닫고 잠시 쉬자. 그리고 우리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 자신을 보고 스스로 돌아보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지 다시 스스로 생각해보자.

김원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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