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강산 ‘산山 내川 들野’ 나들이] 남양주 정약용 유적지

팔당호 절경 거닐며… 다산의 실학정신 되새기다

水閣煙光內(수각연광내) 아지랑이 끼어있는 강언덕 집에

黃薇晩色深(황미만색심) 백일홍 꽃이 짙게 짙게 피어 있네

田園猶慣眼(전원유관안) 산과 들은 아직도 눈에 익은 풍경이고

花木舊怡心(화목구이심) 꽃과 나무는 내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네

樑燕亦新乳(량연역신유) 들보에 제비는 올해도 알을 까고

林櫻空好音(임앵공호음) 숲속의 꾀꼬리는 속절없이 고운 노래

得時堪羨物(득심감선물) 제철 만난 만물이 부럽기만 하여서

倚杖一悲吟(의장일비음) 지팡이 짚고 서서 슬피 탄식하노메라

-정약용-

정약용 선생께서 남기신 많은 글 중에서 도구려술감이나 숙정촌(宿汀村:강마을)은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인양 눈으로 들어온다. 이 풍경의 강마을은 지금 정약용유적지 앞 쪽 ‘다산생태공원’이 되어 우리나라 제1의 강 풍경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 지고 있다.

도구려술감(到舊廬述感)은 성균관대 송재소 교수가 ‘옛집에 들러’라는 제목의 현대어로 옮기고 작곡가 임긍수 선생이 곡을 붙인 노래가 되어 애잔하게 불리어 지기도 한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우리나라 역사상의 가장 큰 스승 중의 한 분이시다. 남양주 조안면 마재마을, 예봉산과 운길산의 남쪽 끝자락,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물가에 그의 생가와 기념관, 문화관이 있다.

지금은 ‘팔당호수’가 된 마재마을을 둘러 보다 보면 “국토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넓고 아름다운 강 풍경을 볼수 있다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마을 북쪽은 예봉산과 운길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호수 건너편 서쪽으로는 하남의 검단산이 솟아 있다. 검단산에 올라 보면 바로 발 아래로 팔당호의 시원한 절경이 전개된다. 추운 겨울날, 호수가 얼음으로 뒤덮히고 눈이 많이 내려 쌓인 날은 자신이 지금 백두산을 올라 천지를 내려다 보는듯한 착각도 하게 된다. 팔당호 건너편 동남쪽으로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백자의 고장이다. 해협산을 너머 양자산과 앵자봉의 부드러운 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다. 앵자봉 계곡에는 백년의 성당 ‘천진암’이 지금도 건립중이다. 강 건너 서남쪽으로는 남한산성을 쌓은 큰 덩치의 웅장한 산이 시야를 압도하기도 한다. 눈길을 발 아래로 당겨 본다. 공원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서로 자태를 자랑하는데, 물가의 수련과 창포를 찾지 못해 아쉬웠다.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물가의 새벽안개를 상상해 보았다. 한 차례 보지를 못하면 평생의 한이 된다는 이곳의 새벽안개풍경은 꼭 한 차례 찾아 가 볼만 한 풍경이다. 이 여름 유서 깊은 이곳에 들러 강변의 시정(詩情)에 한번 젖어 보는 것도 좋겠다.

■ 정약용유적지, 역사공부와 함께 강변의 시정(詩情)에 젖어볼만한 곳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 정약용유적지는 선생께서 태어난 곳이자 강진에서의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 생을 마감한 곳이다. 이곳에는 검소한 그의 생활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묘소와 39세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와 여유당이란 현판을 걸고 살았던 옛집이 복원되어 있고, 선생의 업적과 자취가 전시된 기념관 그리고 정약용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해 보는 문화관이 있다. 이곳에는 실학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실학박물관도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유적지 입구 다산문화의 거리에는 정약용 선생의 얼이 느껴지도록 화성(수원성) 축조에 사용된 거중기가 전시되어 있고 길가의 벽면 동판에는 선생이 집필하신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에서 뽑은 글들이 새겨져 있어서 선생의 생각을 읽을 수가 있다. 기념관에서는 디오라마로 연출한 선생의 일대기와 당시의 생활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정약용 선생의 친필 서한 간찰(簡札)·산수도 등과 대표적 경세서인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사본도 전시되어 있다.

특히 실물 크기의 4분의 1과 2분의 1 크기의 거중기와 녹로가 눈길을 끈다. ‘1997년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화성을 쌓을 때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돌을 들어 올려 백성들의 노고를 덜어주었다. 당시 4만냥의 국가 재정을 절약하는데 큰 힘이 된 거중기와 일종의 크레인인 녹로는 바로 실학정신에 바탕 한 정약용 선생의 설계로 제작된 기계이다.

■ 길고 긴 유배에서 꽃 피운 실학사상

기념관 옆에 있는 문화관에는 정약용 선생의 인간적 고뇌와 삶의 철학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하여 선생의 꿈, 새로운 학문의 세계로, 유배지에서 그리운 마현, 새로운 조선의 발견, 다산 근대의 길 등 5가지 주제를 가지고 그래픽 패널을 만들어 놓았다. 정약용 선생의 사상과 삶의 철학이 잘 드러나는 ‘다산의 삶’이라는 애니메이션 영상물도 자동으로 상영되고 있다.

여유당 뒤 나즈막한 언덕 위에는 정약용 선생과 부인(풍산 홍씨)의 합장묘가 있다.

1762년 임오년, 사도세자가 죽던 해에 태어 난 정약용 선생의 아명은 귀농(歸農)이었고, 자(字)는 미용 또는 용보였으며, 아호로는 열수(洌水), 사암(俟菴)등이 있으나 가장 많이 알려 져 있는 것이 다산(茶山)이다. 열 살 나이 때부터 과예(課藝) 공부를 시작했고 경전(經典)과 사서(史書), 고문(古文)을 열심히 읽었으며 시율(詩律)을 잘 짓는다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1783년 22세 때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여러 차례의 시험을 통하여 뛰어난 성적으로 정조(正祖)의 총애를 받다가 1789년 대과 시험에 합격하여 정식관료로 진출하였다. 이어서 정조의 능행을 위해 한강에 배를 엮어 만든 다리인 주교(舟橋)를 가설하였고 정조의 역점사업인 화성(수원성)의 설계도를 완성하는 등 ‘기술관료’로도 크게 활약하였다. 하지만 그는 정조가 서거하고 순조가 즉위하면서 생애 최대의 전환기를 맞는다.

노론과 남인사이의 당쟁이 1801년 신유옥사라는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비화하면서 정약용은 천주교인으로 지목받아 유배형을 받게 된다. 18년간의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은 고통의 세월이었지만 학문적으로는 매우 알찬 결실을 얻은 수확기였다. 이 시기에 다산학문의 두 축을 이루는 ‘경학’과 ‘경세학’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이루어 졌으며 50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 대부분이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이로써 ‘어떻게 자신을 갈고 닦아 인간관계에서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하는 문제와 ‘국민을 잘살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할 방도’를 찾아내서 책에 담아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배지에서도 제자들을 모아 교육했고, 그들을 저술 작업에 참여시킴으로써 오늘날 ‘다산학단’으로 불리게 된 연유가 되었다.

글=우촌 박재곤

사진=안미옥 (사)정약용문화교육원 사무국장

 

김남기 정약용문화교육원 이사장

‘실학박물관’ 우여곡절 끝 건립… 정약용 사상 널리 전파 할 것

잘 정돈되고 아름답게 꾸며 진 오늘의 정약용유적지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해 온 한 사람의 역사학도를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단법인 <정약용문화교육원>의 김남기 이사장이 바로 이 분이다. 서울대 문리과대 사학과(64학번)에서 한국사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공부한 김 이사장은 서울의 숭문고와 이화여고 교단에서 젊은 날들을 보내신 교육자이다.

슬하의 두 남매가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과감하게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서울을 떠나 ‘학문의 스승인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인 이곳 마재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오대산에서 잘 자란 소나무를 가져다 주변 경관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전통 가옥을 짓고 ‘다산사랑모임’을 결성, 회장직을 맡아 동분서주 뛰어 다녔다.

그의 정성을 하늘이 도운 것일까? 문리과대 동문인 정치학과(65학번) 출신 손학규 동문이 경기도민의 선택을 받아 도지사의 자리에 올랐다.

한사람은 어렵게 뛰어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두 차례의 공청회를 열었고, 또 한사람은 도 차원의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두 사람이 힘을 합해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을 설득해 냄으로서 실학박물관이 건립되었고, 팔당 호숫가에 생태공원이 조성되었다.

이곳에서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익혀 온 ‘정약용선생의 정신세계’를 저술과 강좌를 통해서 후진들에게 전파하고 있는 김 이사장은 오늘도 이곳이 세계적인 학자가 태어나고 돌아가신 마을에 어울리는 맑고도 아름다운 유적지를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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