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839… ‘카메라의 진화’ 한눈에
한 장의 흑백사진이 책 한 권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주기도 한다.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이 강화도 광성보를 점령한 후에 찍은 처참한 풍경, 서울로 압송되어가는 녹두장군 전봉준, 3·1만세 운동의 현장을 찍은 사진은 우리 역사의 생생한 장면들이다.
50~60대라면 ‘올림푸스라’는 카메라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카메라에 얽힌 추억을 더듬다보면, 소풍날 사진관에서 빌린 카메라로 온갖 폼을 잡으며 찍고 나서 필름을 감아야 한다는 것을 깜빡 잊고 무심코 카메라 뚜껑을 열었다가 한 장도 건지지 못해 욕을 먹었던 쓰라린 경험도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 후반이 되면 가정에서도 카메라 한 대는 소유하게 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니콘 혹은 캐논을 어깨에 메고 자랑스레 거리를 활보하던 사람들이 수두룩했는데 요즘은 보기 힘든 풍경이 되어버렸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우리의 일상에서 가까이 하던 카메라가 슬슬 사라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고급 카메라야 팔리고 있지만 그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카메라의 역사는 곧 사진의 역사다. 1836년 프랑스 사람이 감광물질을 발견하여 최초의 사진이 탄생되면서 카메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는 독일제 ‘콘탁스’와 ‘라이카’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59년에 ‘일본광학’에서 카메라 역사의 기념비적 모델이 된 ‘니콘 F’를 출시하면서 카메라 시장은 독일에서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기술의 발전을 거듭하여 디지털 카메라까지 탄생시켰다. 카메라만큼 극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온 물건도 찾기 어렵다. 이러한 카메라의 변천사를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한국카메라박물관이 과천에 있다.
■ 눈앞에 펼쳐지는 카메라 변천사
전철 4호선을 타고 대공원 역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앞에 ‘한국카메라박물관’이 있다. 2007년에 개관한 박물관의 건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카메라의 몸체와 렌즈를 연상하도록 만들어진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180년 이어진 카메라의 놀라운 역사가 펼쳐진다.
전쟁 중에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용카메라, 지포라이터 카메라, 손목시계 카메라, 방아쇠가 달린 권총 카메라, 나이가 백년은 훌쩍 넘은 목재카메라 등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법한 희귀한 카메라를 직접 볼 수 있다. 박물관에는 카메라 3천여 대를 비롯해 렌즈 6천여 점, 유리원판 필름과 초기 환등기, 사진 인화기, 액세서리 등 1만5천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안내하는 학예사의 설명에 따르면 실재 전시되고 있는 카메라는 500여 점이라고 하니 전체 소장품의 15프로 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내부 전시 공간은 층별로 3개 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다. 1전시실은 카메라와 렌즈, 부속 기자재들을 테마와 이야기를 담아 주제별로 기획 전시하는 공간이다. 2층에 위치한 상설전시실은 카메라가 최초로 등장한 1839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단위로 카메라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카메라를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그러니 카메라의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부터 둘러보는 것이 좋다. 처음 만나게 되는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카메라의 시조이다.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 한쪽 벽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와 반대쪽 벽에 구멍 밖 풍경을 거꾸로 나타내는 원리를 이용해 제작한 것이다. 최초의 카메라 옵스큐라는 1839년에 프랑스에서 제작한 것이지만, 이곳에는 1890년 무렵 독일에서 교육용으로 제작한 것이 전시되어 있다. 카메라 루시다 역시 주의해서 살펴야할 물건이다.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콘탁스Ⅱ 라이플이다. 이름처럼 총의 개머리판 위에 장착된 카메라를 방아쇠를 당겨 셔터가 동작되도록 만든 것으로 히틀러 나치 정부의 주문으로 단 4대가 제작되었으나 현재는 오직 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카메라다. 게다가 제작한 해도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1936년이다.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는 손기정 선수 당당한 모습과 이를 보도하는 신문사가 월계관을 쓴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실어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운 ‘일장기말소사건’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역사적인 유물이다.
■ 박물관을 열기까지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설립자인 김종세 관장의 헌신과 열정의 산물이다. 젊은 날 그는 광고와 디자인 계통의 일을 하면서 카메라에 빠져 카메라 수집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카메라 박물관 설립을 계획하던 1993년 당시에 그가 소장하고 있던 카메라가 400대에 가까웠다. 이때부터 박물관을 만들기로 계획하고 꼭 필요한 카메라들을 의욕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카메라에 대해서도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고, 1998년부터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카메라를 구입하기 위해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을 드나들었을 뿐 아니라 전 세계 120여 개국을 돌아다녔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패망 후, 아르헨티나는 나치 전범들의 주 도피처였던 까닭에 희귀한 독일제 카메라를 많이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여러 차례 밝힌 것처럼 “지금까지 필요에 의해 카메라를 교환하는 일은 있었지만, 팔아서 돈을 만든 일이 단 한 차례도 없었”기에 우리나라 최초로 카메라 전문박물관을 개관할 수 있었다.
■ 체험으로 배우는 카메라의 원리
지하에 위치한 제3전시실은 다양한 사진전시, 스튜디오, 암실 등 다목적기능을 가진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카메라’ 교육과 같은 문화강좌, 카메라를 직접 만들어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만들어 보는 체험, 카메라의 원리, 사용법, 촬영방법들을 간단하게 배운 뒤 촬영한 필름을 암실에서 직접 현상, 인화작업을 해보는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역시 아이들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손으로 만지며 체험하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사실 오묘한 카메라의 원리를 말로 설명해서는 이해하기가 어렵고 재미도 없다. 박물관에서 마련한 카메라 옵스큐라, 바늘구멍(핀 홀) 카메라 만들기 체험 학습은 카메라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박물관에서 제작한 바늘구멍 카메라는 2300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 노트에 기록되어 있던 원리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매년 4~6회 특별전을 통해 세계 카메라 발전사에 크게 기여한 명작 시리즈나 역사적인 명기, 희소가치가 큰 카메라 등을 기획 전시하고 있다. 그 동안 라이카 카메라 특별전, 펜탁스 카메라 특별전, 옛날 카메라로 찍은 사진전, 입체카메라 특별전, 군용카메라 특별전, Rolleiflex & 세계 이안반사식 카메라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 좋은 사진을 찍는 비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사진은 일상이 되었고,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갖춘 아마추어 사진가들도 적지 않다. 작가가 아니라도 ‘DSLR’로 불리는 고급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고급 카메라를 가졌다고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마 모를까. 필자 주변에도 거금을 들여 고급 카메라를 샀다가 채 1년도 되지 않아 흥미를 잃고 장롱 속에 보관만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거금을 들여 고급 카메라를 장만하는 것은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잠재우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달리 방법이 없다. 어떤 카메라건 늘 손에 들고 다니며 많이 찍는 것이야말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비결 아닌 비결이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박물관을 만든 주인공은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며 어떤 작품을 찍고 있을까. 마침 박물관 지하 전시실에는 박물관장 김경세 작가의 다랑이논을 주제로 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하늘에서 찍어 지도의 등고선처럼 보이던 다랑이논을 다시 쳐다보니 카메라의 조리개를 닮았다. 이번 주말에는 집 어딘가에 처박아둔 카메라를 찾아 렌즈라도 닦아야겠다.
이경석(한국병학연구소)
사진=윤원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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