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어쩌자고

어쩌자고

             - 진은영

   

밤은 타로 카드 뒷장처럼 겹겹이 펼쳐지는지, 물위에 달리아 꽃잎들 맴도는지. 어쩌자고 벽이 열려 있는데 문에 자꾸 부딪히는지. 사과파이의 뜨거운 시럽이 흐르는지, 내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지. 유리공장에서 한 번도 켜지지 않은 전구들이 부서지는지. 어쩌자고 젖은 빨래는 마르지 않는지. 파란 새 우는지, 널 사랑하는지, 검은 버찌나무 위의 가을로 날아가는지, 도대체 어쩌자고 내가 시를 쓰는지, 어쩌자고 종이를 태운 재들은 부드러운지

『우리는 매일매일』문학과지성사, 2008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Descartes, René)는 어려서부터 의심이 많았다. 한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사인이 결핵이었다. 갓 태어난 데카르트도 결핵을 앓았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병 때문에 혼자 침대에 누워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만 많아지게 되고 결국엔 그 생각들이 의심으로 체계화되어 그는 평생을 ‘의심하는 철학자’로 살았다. 어린 데카르트가 침대에 누워 바라본 세계는 어떠했을까?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상과 사건들에 대해 ‘왜’라고 물어보지만, 대답이 없는 세계의 무표정함에 의심의 싹을 틔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고, 있다면 의심하는 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제시한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불확실한 세계를 사는 인간의 고독을 여실히 보여준다. 의심하기에 고독하고, 고독하기에 의심하는 불합리의 순환을 감당하는 삶이다. 불합리하기 때문에 삶은 지속된다.

진은영 시인의 시 「어쩌자고」는 설명할 수 없는 세계와 그 세계를 살아가는 주체의 하염없는 심정을 토로한다. 어쩌자고 밤은 오는가? 어쩌자고 물 위에 달리아 꽃잎이 맴도는가? 어쩌자고 켜지지 않은 전구들이 깨지는가? 어쩌자고 널 사랑하고, 어쩌자고 시를 쓰는가? 시인이 열거한 ‘어쩌자고’라는 말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난감해 보이지만 이미 우리는 그 무게를 충분히 감당하고 있다. 삶은 불합리하다. 그 불합리를 운명이라 생각한다면 당연히 ‘어쩌자고’라는 외침이 나올 수밖에 없다. 널 사랑하는 이유를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때 더 사랑하게 되는 게 사랑의 운명이다. 그 운명 앞에서 우리는 가끔 조급해질 수도 있다. 어쩌자고 젖은 빨래가 마르지 않느냐고 초조해할 수도 있다. 지독한 비관주의자는 빨래를 물속에 계속 담아두면 마르지 않을 것이라 말로 마른다는 사실을 의심하고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젖은 빨래는 마른다. 데카르트가 세계의 모든 것을 의심한 이유는 세계의 모든 것을 믿기 위해서였다. 시인이 우리에게 던진 ‘어쩌자고’의 맥락도 마찬가지다.

진은영 시인의 시 「어쩌자고」에 반복되고 있는 ‘어쩌자고’는 감당해야 할 것들을 감당하기 위한 정신의 응전이라 할 수 있다. “어쩌자고 종이를 태운 재들은 부드러운지”라는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시인이 말하려는 ‘어쩌자고’의 미래를 엿본다. 그것은 격렬하게 타올라 부드럽게 재를 남기는 삶이 아닐까?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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