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절망에 빠져있는 지금, 단비처럼 대중에게 위로를 주는 열풍의 주역이 있다. 바로 트로트다. 한 종편 방송의 오디션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돌풍을 일으키며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 전통가요 ‘엔카’(戀歌), 미국의 컨트리송(Country song)과 비교되는 국내 트로트의 역사는 한국의 근대사와 괘를 같이한다. 일제강점기, 미국 춤곡인 폭스트로트(Foxtrot)가 일본의 정서에 맞게 일본 민요와 합쳐져 탄생한 엔카가 국내에 유입되고 엔카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트로트가 탄생한다. 1930년대와 40년대를 거쳐 트로트는 높은 음악적 완성도와 세련되고 서구적인 느낌의 고급 음악이라는 인식으로 최고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지금까지 명곡으로 인정받는 ‘목포의 눈물’과 ‘나그네 설움’등이 당시 발표된 대표적 트로트곡이다. 1950년대 전쟁과 해방을 겪으며 분단과 전쟁의 아픔과 비애를 그린 ‘단장의 미아리 고개’, ‘굳세어라 금순아’ 등이 유행하며 트로트의 대중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1960년대 군부정권이 집권하면서 트로트는 일본 대중가요의 강력한 영향아래에서 형성된 양식이라는 점에서 ‘왜색’, ‘일제 잔재’로 청산의 대상이 되고 ‘뽕짝’이라는 비칭으로 불리게 된다. 1970년대 미국 포크 음악 장르가 유입되고 유행하면서 트로트는 비주류로 밀려나고 1980년대를 지나며 중장년층이나 낮은 계층의 취향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특유의 비극성에서 벗어나 흥을 돋우는 신나는 노래로 트로트는 변화했지만 여전히 B급 문화를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 트로트가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중장년층의 전유물이 아닌 10대와 20대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장르로 거듭나고 있다. 중ㆍ고등학생 위주였던 대중문화 소비계층이 40~60대로 이동하는 문화 주체의 변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장년층이 대중 문화의 핵심 소비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며, TV시청과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 늘어난 상황도 영향을 미치며 갇힌 일상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문화 주체로 ‘K-트로트’가 떠오르는 것이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최종 우승은 고급스런 목소리의 감성 장인이라 평가되는 임영웅 참가자가 차지했다. 트로트가 ‘라시도미파’의 단조 5음계 혹은 ‘도레미솔라’의 장조 5음계의 독특한 음계를 사용한다는 것과 트로트의 역사적 흐름에 대해서 필자가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바로 임영웅의 경연 트로트 곡을 우연히 듣게 되면서부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료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새로운 문화 현상의 주류가 된 듯한 묘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의 노래를 듣고있으니 생각나는 아랍의 전설적인 가수가 있다. 바로 레바논 출신의 파이루즈(Fairuz)다. 이집트 출신인 움무 쿨숨(Umm Kuthum)과 함께 아랍세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가수로 평가되고 있는 인물이다. 1934년생인 파이루즈는 아랍 지역뿐 아니라 미국, 유럽 지역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빌보드지는 ‘60년 후에도 최고로 남을 레바논의 디바’로, 뉴욕타임지는 ‘대체 불가한 살아있는 아이콘’으로, BBC는 ‘레바논의 전설이자 가장 위대한 살아있는 아랍의 디바’로 그녀를 극찬한 바 있다. 파이루즈의 음색과 노래의 곡조는 한과 설움이 녹아있는 우리네 트로트와 매우 흡사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트로트 특유의 꺽임을 파이루즈의 노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개인적인 느낌은 아닐 것이다. 파이루즈는 80이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2017년까지 새 앨범을 발매하며 아랍의 전설적 디바임을 입증했다. 파이루즈의 팬들 중 일부는 한국의 한 신예 트로트 가수와 그들의 위대한 전설인 파이루즈를 비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적 상이성과 시대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 대중은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고 상처를 치유 받으며 삶의 활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대중 문화의 아이콘을 넘어 대중 문화계의 이노베이션으로 표현할 수 있는 두 가수의 음악, 이것이 대중 문화의 힘인 것이다.
김수완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통번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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