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어주는 남자] 내 마음속의 모든 슬픔을……

내 마음속의 모든 슬픔을……

                         -프랑시스 잠

내 마음속의 모든 슬픔을

네가 알 수 있다면,

병들고 가여운

어느 어머니의 눈물에

넌 그걸 비교하리.

지치고 휑하고, 일그러지고 창백한

얼굴의 어느 어머니,

바로 닥친 죽음을 느끼고,

막내 아가에게 주려고

윤나는 장난감, 그러나 싸구려 장난감을

그 앞에 풀어 보이는 그런

가여운 어머니의 눈물에.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 민음사, 2014

슬픔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마치 안개 같아서 딱 잘라 무엇이라 정의(定義)하기 어렵다. 사전을 찾아보면 슬픔이란 “슬픈 마음이나 느낌”, “정신적 고통이 지속되는 일”이라 적혀있다. 이런 정의는 슬픔의 깊이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테(Alighieri, Dante)는 《신곡》의 ?지옥편?에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처럼 큰 슬픔은 없다.”라고 썼다. 단테의 말은, 슬픔이란 그 자체로 이해되어지기보다 행복과 견주어 볼 때 그 윤곽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면 그것을 다른 것과 견주어 보는 행위, 즉 비유(比喩)를 구사해보면 된다. 행복이란 충족에서 오는 감정이다. 일례로, 배가 부르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그렇다. 그런 면에서 슬픔이란 결여에서 오는 감정의 분출이라 유추할 수 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슬픔을 느낀다. 그런 슬픔들 중 가장 큰 슬픔은 무엇일까?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의 시 ?내 마음속의 모든 슬픔을……?은 모든 슬픔의 근원을 “병들고 가난한/어느 어머니의 눈물”에 비유한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것이다. 그래서 타인이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정말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상대방이 어떤 일로 슬퍼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느끼는 슬픔의 깊이까지 측정할 수는 없다. 만약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의 눈물’과 견주어 짐작할 때만, 즉 비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프랑시스 잠의 생각이다. 어머니는 모든 충족의 근원이자 행복의 발원지다. “내 마음속의 모든 슬픔”이란 어머니 같은 것들의 상실에서 오는 결여의 감정이다. 지치고, 휑하고, 일그러지고, 창백한 어머니가 자신의 죽음을 느끼고 ‘막내 아가’에게 주려고 ‘싸구려 장난감을 풀어 보이며 눈물 짓는 가여운 모습. 그러한 어머니의 모습을 깊게 떠올려 보는 것이 타인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의 깊이를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게 시 ?내 마음속의 모든 슬픔을……?의 전언이다.

시는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의 깊이를 비유를 통해 드러낸다. 예수가 비유로써 설교한 것처럼 우리는 비유를 통해 서로의 경험들을 깊게 이해할 수 있다.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방식은 자신이 경험한 슬픔의 최대치에 견주어 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하는 것이다. 가장 큰 슬픔은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는 슬픔일 것이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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