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2월, 나는 한ㆍ일 관계에 따른 한 행사에 참석한 것을 기회로 당시 일본 구마모토 지사로 있던 호소카와를 그의 집무실에서 면담할 기회를 가졌다. 훤칠한 키에 젊음이 넘치는 그의 모습은 참신함 그것이었다. 그의 언변도 여느 정치인에게서 볼 수 없는 진솔함이 느껴졌다. 특히 그는 ‘지방분권’을 많이 강조했다.
그 무렵 일본은 자민당의 38년 장기집권에 정경유착 등 정치의 부패로 개혁을 갈망하는 소리가 높아 가고 있을 때여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는 그런 개혁의 기수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과연 그는 얼마 안 있어 ‘일본신당’이라는 당을 만들어 일본 열도에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방 도지사를 했을 뿐 국회의원은 한 번도 한 일이 없었지만 일본 사회당 등 8개 야당이 호소카와를 중심으로 뭉쳤다. 마치 현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고도 앙마르슈(전진)운동을 벌여 대권을 잡았듯이 그렇게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마침내 1993년 총선에서 호소카와는 승리하여 총리에 오른다. 일본 정치의 물갈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물갈이는 너무도 단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가 추진하던 국민복지세 신설이 좌절되면서 자신을 밀었던 정당과의 연정에 갈등이 시작되고 정치개혁도 지지부진했다. 그런데다 그가 사가와 유빈그룹으로부터 1억 엔을 차입한 사건이 스캔들로 번지면서 호소카와 내각은 1년도 넘기지 못하고 9개월 만에 붕괴하고 말았다. 그렇게 개혁은 물갈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사람만 바꾼다고 정치가 바뀌는 것이 아니고 그 밑받침을 하는 정치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사실 우리 국회가 그동안 선거 때마다 물갈이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96년의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45.8%가 물갈이된 것을 비로소 16대 40.7%, 17대 62.5% 등 20대까지 거의 50%대의 물갈이를 해왔다. 미국의 상·하 의원 13~15%의 물갈이에 비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다.
그런데도 왜 우리 정치는 조금도 발전하질 못하고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의 진흙탕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가? 17대 때 열린우리당은 68%를 물갈이하여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16대 때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그렇게 해서 273석 중 133석을 차지하는 성공을 했다. 이회창 총재는 물갈이의 폭을 넓혀 오랫동안 한국정치판의 중심이었던 ‘3金 청산’을 내걸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한국 정치가 얼마나 발전했는가?
물갈이로 초선 의원들이 많아졌으면 의회정치도 새로워져야 하는데 시간이 가면 도루묵이 되어 버리는 것은 왜일까? 그 대답은 논농사의 기본을 중시하는 농부들에게 들어야 한다.
벼농사에서 중요한 것이 물갈이임은 분명하나 더 중요한 것이 ‘객토’(客土)라는 것이다.
아무리 물갈이를 잘해도 논바닥의 토층(土層)이 좋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토양의 결함, 이를테면 자갈땅, 광물질이 부족한 땅, 오염된 물로 썩거나 산성화된 땅…. 이런 논에는 좋은 흙을 옮겨다 토층을 새롭게 바꾸고 튼튼하게 하는 객토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우리의 국회도 물갈이가 전부가 아니며 정치판을 바꾸는 객토작업이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국회의원 개인의 소신 존중하기, 다선위주의 비민주적 원구성 지양…. 등등
정말 우리 정치판을 바꾸는 객토작업이 절실하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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