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단상] 국외연수 개선 방향에 대한 제언

“우리가 숭늉 마시듯이 서양인들은 커피를 마신다.”

서유견문의 한 대목이다.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 유길준은 미국인들이 마시는 커피가 신기했다. 새까만 물에 맛도 썼다. 숭늉을 마셨던 그에게 커피가 생소했던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그는 서유견문에 ‘서양탕국’ 커피에 대한 이야기도 써 넣었다.

서유견문이 세상에 나온 지 120년이 넘었다. 지금 우리는 그가 봤던 서양인들보다 훨씬 더 커피를 즐기는 민족이 됐다. 숭늉과 커피를 비교했던 구한말의 유길준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가 서유견문을 통해 전하려 했던 것은 서양의 대표적인 기호식품 커피를 통한 서양문화의 단면이 아니었을까.

청년 유길준의 진취적 성향은 남달랐다. 스승 박규수의 집에서 지구본을 접한 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하게 됐다. 그는 조선이 가진 취약성을 보완하려면 무엇보다 조선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기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전(古典)인 서유견문을 언급한 이유는 지방의회의 ‘국외연수’ 때문이다. 지방의회가 많은 세금을 들여가며 국외연수를 추진하는 이유는 유길준의 생각처럼 선진화된 외국의 시스템을 배워 지역발전에 과감히 접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와중에 강행한 전국 기초(광역)의회의 국외연수가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시기에 이어 어김없이 연일 논란이 되고 있듯 국외연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많아 지방의회의 오랜 고민거리로 남아있다.

지난해 예천군의회 국외연수 중 일어난 사건으로 행정안전부는 전국 지방의회에 지침을 내려 혈세 낭비의 소지가 없도록 관련 규칙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전국 지방의회는 정부의 권고안대로 규칙을 개정해 국외연수 심사를 의원이 아닌 외부 민간위원에게 맡겨 엄격하게 심사하고, 출장보고서의 내실도 크게 강화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비판적 언론보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국외연수가 여전히 국민정서와는 동떨어진 외유(外遊)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국외연수가 의원의 전문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발전을 이루는 데 필요한 의정활동으로 자리잡게 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기초의회 의장으로서 오랜 기간 고민해 왔다. 우선 계획단계부터 철저한 준비와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국외연수 장소와 시기가 확정되면 연수 국가의 정치, 사회, 교육제도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알아야 한다. 2회 이상의 연찬과 필요한 경우 개인별 연구도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의원들은 방문하게 될 국가의 특성뿐만 아니라 연수기관의 정보를 파악하면서 연수목적을 머리에 명확하게 새길 수 있다.

둘째, 국외연수 중에는 사전에 실시한 연찬을 토대로 생생한 현장학습을 이어나가야 한다. 연수기관을 방문했을 때 시스템이나 특성이 사전정보와 일치하는지 살펴본 뒤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관계자에게 즉시 물어 궁금증을 해소해야 한다. 여기에 우리 지역보다 앞서 있는 장점들이 눈에 띈다면 기억해 두고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 가능성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귀국한 후에는 연수에서 보고 느낀 점을 의원의 생각을 더해 정책제안서를 작성한다. 제안서는 그동안 천편일률적이던 단순한 보고서 이상이어야 한다. 의원들은 연수기관 관계자와 나눴던 세세한 대화 내용과 그에 따른 의견을 적고, 정책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지 제안서에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이 같은 제안이 이상적이고 과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부정적인 국민정서를 뛰어넘으려면 ‘콜럼버스적 대전환’이 필요하다. 실제 사례도 있다. 지난해 6월 독일, 덴마크, 스웨덴 연수를 다녀온 서울 관악구의회 국외 정책연수 결과보고서는 무려 175페이지에 달한다. 보고서의 양도 놀랍지만 완성도도 상당하다. 연수에 참가한 의원들은 4개 분야, 19개의 정책 제안을 20페이지 분량으로 쏟아냈다. 이 결과보고서는 국외연수는 외유라는 선입견을 단번에 지워낼 정도로 질적으로 우수했다. 관악구의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내 기초의회 최초로 본회의장에서 출장보고를 하도록 규정도 바꿨다. 획기적인 변화다.

지방의회 국외연수 논란이 꼬리를 물 때마다 지방의회 무용론도 재점화된다. 지방자치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드는 국외연수를 언제까지 이대로 놔둘 순 없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스스로 환골탈태해 국민의 신뢰를 다시 쌓아야 한다. 그리하여 전국 지방의회 모든 구성원들이 힘들여 쌓아올린 지방분권의 열망을 끝까지 이어나가야 한다. 개화기 내각에도 참여했던 유길준이 그토록 바랐던 것은 바로 이런 세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희창  양주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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