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어느 날, 세 살배기 여자아이가 엄마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진 채 죽었습니다. 또 다른 다섯 살 남자아이는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새아버지에게 맞았습니다. 모두 2019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고통은 연령별로 오지 않습니다…”
장편소설 <어항에 사는 소년>(소원나무刊)을 펴낸 강리오 작가의 말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출간된 이 책은 가족이 선물이 아닌, 굴레이자 폭력이 된 세 명의 ?소년을 비춘다. 232쪽의 분량을 채우는 내용은 모두 불편한 진실이다. 열네 살 영유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집 근처 중국집에서 일하는 배달 형, 친구 현재를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유는 3년 전 사채업자에게 쫓겨 작은 빌라로 이사 온 다음부터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시는 엄마와 함께 산다. 학교도 가지 않고 온종일 집에만 있다. 영유가 하는 일이라곤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 설거지나 청소를 하는 거다. 한 달에 한두 번, 분리수거 하는 날에만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엄마는 며칠씩 밥을 주지 않는 일이 허다했고, 옷도 없어 겨울에도 반소매로 지내야 했다. 사소한 일로 트집 잡아 때리기 일쑤였다. 영유에게 나타난 배달 형 역시 신체적 학대에서 벗어나려 가출한 아픔이 있었다. 친구 현재는 부모에게 심리적 학대를 겪고 있다. 이들은 서로 상처를 공유하면서 점점 관계가 깊어진다. 이들은 서로에게 건네는 소박한 위로 덕분에 가족이란 이름의 폭력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집이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이 아닌 도망쳐야 할 위험한 공간에 놓여 있는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다. 소설로 다뤘지만, 결코 허구가 아닌 지금 어디에선가도 일어나는 일들일 테다.
책은 아동학대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섬세한 감정 표현과 말랑말랑한 청소년들의 심리를 그려낸 청소년 문학이다. 과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된 아이들의 말투와 아픔을 말하는 고백은 그래서 더 아프다.
책은 또 독자에게 아동학대의 의미를 제정의 하도록 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엄마가 내뱉은 폭력적인 문장 앞에서 움츠러든 현재와 냉장고 코드조차 뽑혀 버린 집에서 며칠 동안 한 끼도 먹지 못한 영유를 보게 된다. 학대가 신체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 심리적 학대 역시 끔찍한 아동학대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책의 마지막은 바이킹을 타는 장면이다. 집에만 있던 영유에게 어느 날 현재가 바이킹을 타러 가자고 제안한다. 어항 속 물고기처럼 갇혀 내내 집에만 머물던 영유가 바이킹을 타고 세상을 날 수 있을까. 오롯이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청소년이 어른의 소유가 아닌, 온전한 삶의 주체임을 작가는 말한다. 값 1만 3천 원.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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