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용의 더클래식] 음악의 아버지 바흐

우리에게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만약 바흐가 1700년대가 아닌 지금 이 시대에 활동하는 작곡가였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는 최고의 부를 누리며 사는 음악가(작곡가) 중 한 명일 것이다. 끊이지 않고 전 세계에서 연주되고 있는 그의 작품, 그리고 그의 곡을 주제로 한 수많은 변주곡. 저작권 수입만 해도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1700년대를 살다간 바흐는 가난에 찌들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음악을 통해 몸부림쳐야 했던 무명의 작곡가였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그의 이름과 업적 때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바흐(Bach)‘는 독일어로 ‘실개천’, ‘시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은 바흐는 “바흐(Bach)가 아닌 메어(Meer)라고 불러야 한다”며 그의 업적에 큰 경의를 표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베토벤이 접한 바흐의 작품들은 졸졸 흐르는 작은 실개천이 아니라 바다만큼 넓고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1889년 바르셀로나의 한 악기점 구석에서, 당시 바르셀로나 음악원에 재학 중이었던 13살의 한 소년이 수북한 먼지 속에 쌓여 있는 낡은 악보 뭉치를 발견했다. 우연히 발견한 이 악보를 펼쳐든 소년은 가슴 벅차오르는 희열 속에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홀로 악보를 탐구하고 연습한 끝에 비로소 이 곡을 세상에 알렸다. 이 연주 이후 이 작품의 가치가 알려지면서 오늘날 첼리스트들의 필수 레퍼토리가 되었는데, 이 작품은 바로 바흐의 그 유명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고, 이 작품을 바르셀로나의 한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이 작품의 가치를 바로 알아본 이 소년이 바로 세상에 다시없을 만큼 뛰어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였다. 어쩌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채 그대로 묻힐 뻔했던 바흐의 위대한 작품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바흐가 세상을 떠난 지 140여 년이 지나서야 소년 카잘스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어 오늘날 우리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카잘스는 60세가 되어서야 이 곡을 음반으로 녹음했다.

바흐가 궁정악장 직위를 받고(1717), 그의 쾨텐 시대를 열어간 1717~1723년 사이에 쾨텐(Koethen)에서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섯 곡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독주 악기로서 첼로의 가능성을 보여준 위대한 작품이자 첼로 레퍼토리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이다. 바흐 시대까지만 해도 첼로는 베이스 선율을 담당하는 저음 현악기로서 멜로디를 뒷받침하는 통주저음 악기로 인식되었다. 길게 지속되는 베이스 성부 위에 멜로디가 전개되는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악기는 주로 바이올린 같은 높은 음역의 악기들이었다. 통주저음이나 앙상블을 이루는 일체의 악기를 배제한 채, 오직 한 대의 첼로만으로 모음곡을 구상한 것은 그 아이디어만으로도 이미 파격적이었다. 20세기 초, 파블로 카잘스가 악보를 재발견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연주되고 있으며, 무반주 첼로 음악의 핵심이다.

정승용 지휘자•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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