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던 호르무즈 해협에 긴장의 파고가 일고 있다. 연초 북한의 전략무기 공개 가능성에 관한 촉각이 갑자기 중동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미국은 왜 이 시점에 이란을 자극하고 있는가. 복수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이슬람의 시아파 국가는 보복을 공언하고 있다. 이란 주변국들과 전 세계의 이해관계국가들이 사태의 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심각한 대미 테러를 기획하고 있어 예방타격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선제 드론공격을 하였다는 것이 백악관의 설명이었다.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도 단행하지 못했던 이란의 군수뇌 제거를 트럼프 대통령은 가차없이 실행했다. 솔레이마니가 기획했다는 미국의 군인,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한 정교한 테러모의가 과연 있었을까.
이번 사건은 9·11테러 직후 미국의 대아프간 전쟁 개시 때와는 차원이 많이 다르다. 당시 미국은 기습적인 본토공격을 받은 초유의 상황이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미국 내 일부 여론은 물론이고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다수 서방국가들이 반대했다.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선제 타격과 제거를 내세웠던 미국의 명분은 이라크에서의 포연이 멈춘 뒤 설득력을 잃었다. 국가적 자존심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무모함은 그럭저럭 세월 속에 묻혔다. 반미 적대감이 강한 솔레이마니가 미국을 대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대규모 테러 작전을 감행할 의지가 분명하였더라면 미국의 선제공격은 납득할 수 있다. 이미 2001년 전대미문의 테러공습으로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생긴 미국이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에서 명백한 WMD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이란의 혁명수비대 사령관의 음모가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은 채 그의 반미노선을 구실로 제거하였다면 국제사회에서의 논란은 잠잠해질 수 없다.
미국 내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이 충동적으로 과잉반응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민주당 측을 주축으로 한 다수의 미국인은 의구심을 표출하고 있다. 탄핵정국의 관심을 대외안보 이슈로 전환하면서 재선 가도에서 유리한 입지를 마련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많다.
이번 사태는 여러 가지 함의를 던지고 있다. 이슬람국가(IS)의 일시적인 퇴조로 테러집단의 활동이 다소 위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솔레이마니의 사망으로 중동을 중심으로 한 테러 네트워크가 다시 준동할 여지가 있다. 자칫 이란과 미국 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면 중동의 불안이 심화하면서 국제경제가 혼란에 빠져들 것이고, 한국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자명하다. 이란의 즉각적인 미사일 발사에도 아직 확전으로 진전되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어렵게 도출된 이란 핵 합의가 미국의 일방적 폐기로 인해 비확산 이슈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고, 금번 드론 공격에 따라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가속하면서 다시 핵개발에 착수하면 이란의 핵 문제가 북핵 이슈와 함께 글로벌 핵심 어젠다로 재설정될 것이다. 한반도 문제 역시 세계지도 속에서 쳐다볼 수밖에 없다. 중동 문제건 북핵 이슈건 미국이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를 힐난하는 폴 크루그먼의 따가운 지적이 계속되면서, 국제협조주의를 요망하는 윌슨의 후예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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