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오르는 산에 조그만 암자가 하나 있다. 그런데 한 번도 그 암자의 스님을 보지 못했고 찾는 신도들도 어쩌다 한두 명 있을까…. 언제나 조용하다. 재정이 어려운지 ‘부처님 오신 날’ 암자 마당에 걸어 놓은 등(燈)이 몇 해가 돼도 그냥 달렸다. 이렇듯 가난하고 조용한 암자이지만 산비둘기나 부엉이 같은 새들이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암자로 가는 좁은 길에 낙엽이 쌓여도 누구도 그것을 쓸지 않고 있어 암자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적막하기까지 했다. 유일하게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귀여운 다람쥐.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좁은 길의 낙엽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낙엽이 걷힌 황톳길에는 빗자루로 쓴 흔적이 확연했다. 그래도 스님은 보이질 않았다. 그 다음 날도 밤새 떨어진 낙엽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리고 마침내 이 고요한 암자에도 첫눈이 내렸다. 그런데 내가 산을 오를 때는 이미 길에 눈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역시 스님은 보이질 않았고…. 하루가 지나도 한두 사람 다닐까 말까 한적한 산길을 이렇게 빗질하는 스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문득 정종수 시인의 ‘길가의 돌’이란 시가 떠오른다.
내 죽어 하느님 앞에 설 때여기 세상에서한 일이 무엇이냐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물으시면나는 맨 끝줄로 돌아가 설 거야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세상에서 한 일이 없어끝줄로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내 차례가 오면나는 울면서 말할 거야정말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그래도 무엇인가 한 일을 생각해 보시라면마지못해 울면서 대답할 거야하느님, 길가의 돌 하나 주워신작로 끝에 옮겨 놓은 것밖에 한 일이 없습니다.
참으로 인생을 들떠 살아온 사람들 마음을 겸허하게 해 주는 시다. ‘길가의 돌 하나 주워 신작로 끝에 옮겨 놓은 것밖에 한 일이 없다’는 시인의 고백은 우리들 양심의 밑바닥을 강하게 때린다. 정말 우리는 길가의 돌 하나라도 옮기며 살았을까?
산속 암자의 스님처럼 겨우 한두 사람이 다니는 길 위의 눈을 쓸어 본 일이 있는가? 오히려 길에다 돌을 놓고 길 위에 눈을 깔아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지는 않았는가? 사실 우리는 너무도 많이 이런 악수(惡手)를 두며 살아왔다. 건물 비상구에 물건을 쌓아 화재가 났는데도 탈출을 못한 사람들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면 이런 것이 길 위에 바위 덩어리를 놓은 것이다.
어린 제자에게 성범죄를 저질러 한 인생을 어둠 속에 던져 버렸다면 이 또한 길 위에 바위를 놓은 것이다. 대학 입학과 선거에서 그리고 취업에서 공정과 평등을 외면하고 지위와 권력의 음습한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했다면 이것은 골목길이 아니라 고속도로에까지 바위를 깔아놓은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기저기 바퀴벌레처럼 어두운 곳에서 이와 같은 공작을 꾸미는 세력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세력들은 그럴듯한 구호를 내걸고 있어 사람들의 눈을 홀린다.
더욱 올해는 총선이 있는 해인데 ‘오사카 총영사 자리 제안’ 같은 역겨운 단어가 나오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2020년 길 위에 돌을 치우기는커녕 바위 덩어리를 놓지 않기를 기원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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