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계절
- 문형렬
마음에 걸릴 것 없는
좋은 시절이 있었다 해도
이제 문을 열어두고 안녕이라고 하자
바람의 경전이여
방랑의 꿈들이여
모든 덧없는 천사들이여
슬픔에 잠긴 그림자에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고 말하자
슬픔이
스스로 만들 길로
태양의 계절이 찾아온다고
《해가 지면 울고 싶다》, 기파랑, 2013
한 해가 지고 새해가 밝았다.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의 크기가 달라 마음이 휑하다. 그런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구분하여 둘의 차이를 좋고 나쁨으로 비교하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이루지 못한 것은 다음에 이루면 된다. 그 간단하고 자명한 이치를 잊고 당장 결과만 측정해 자학에 가까운 반성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은 좋지 않다. 사랑은 슬픔의 다른 이름이고, 성공은 실패의 다른 이름이다. 이처럼 대립하는 것들은 결국 하나의 몸이다. 그런데 우리는 늘 사랑만 생각하고 성공만 추구한다. 슬픔과 실패는 애써 피하려고 한다. 처음이 끝이고, 끝이 처음인 바퀴의 테두리처럼 사랑의 지점에 슬픔이 있고, 성공의 지점에 실패가 있다. 굴러감으로써 둘은 하나로 살고 그로써 한 곳으로 간다.
문형렬 시인의 시 ‘태양의 계절’은 세상의 길을 다 걸어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깊은 잠언의 세계를 보여준다. “마음에 걸릴 것 없는/좋은 시절이 있었다 해도/이제 문을 열어두고 안녕이라고 하자”는 첫 연의 구절이 그렇다. ‘좋은 시절’을 곁에 잡아두지 않고 문 열어 보내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다. 더 오래 좋은 시절을 누리고 싶은 게 보편의 심정이다. 그런데 시인은 ‘안녕’하며 그 시절을 놓아준다. 잡아 둘 수 없음을 알기에 가게 하는 것, 슬픔이란 바로 그런 일이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어디론가 불어가는 것이 바람의 경전인 것처럼 삶 또한 그런 도리를 따른다. 방랑의 꿈은 정처 없고 덧없어 보지만 그 끝에는 ‘모든 것’이 만나는 ‘태양의 계절’이 있다. 그 계절은 슬픔의 ‘오랜 시간’이 만든 ‘좋은 시절’의 새롭고 아득한 풍경일 것이다.
좋은 시절을 만나려면 슬픔과 실패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슬픔이/스스로 만들 길로/태양의 계절이 찾아온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문득 “오랜 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왔다.”라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문장이 생각난다. ‘오랜 시간’에 묻어 있는 슬픔의 냄새를 생각하며 한 해를 살아봐야겠다.
신종호 시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