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본거지를 두고 전 세계를 순회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우뚝 서 있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계의 오케스트라를 주도하는 두 개의 커다란 산맥이다. 이 두 오케스트라는 닮은 듯 서로 다른 개성을 뽐내며 클래식의 최고봉을 향해 달리는 ‘선의의 동반자’이다. 이들이 가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전 좌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남기곤 한다. ‘오케스트라의 최고’라는 이들. 바로 지금 그들의 정체를 낱낱이 파헤쳐 보려 한다.
베를린 필과 빈 필! 세계적인 악단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이들 모두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런 정식 명칭을 달고 첫 공식 연주회를 한 것은 1842년. 이들은 무려 180여 년의 전통을 가졌다.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정식 명칭을 달고 연주를 시작한 것은 1887년. 빈 필에 비해 햇수가 조금 뒤지지만 그래 봐야 오십 보 백 보이다. 현재 빈 필과 베를린 필이 찬사를 받는 데에는 이런 오랜 역사를 발판 삼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들 두 악단의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태생부터가 다른 이 두 악단은 일단 음색에서부터 확실한 차이가 있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나라 독일에서 탄생한 베를린 필은 다소 차갑지만, 칼같이 매우 정확한 연주로 정평이 나있다. 이에 반해 빈 필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빈의 기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보수적이지만 매우 정감 넘치고 우아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또 단원 구성과 지휘자 여부를 놓고 빈 필과 베를린 필은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빈 필의 경우, 상임 지휘자를 두고 있지 않다. 연주할 때마다 개원 지휘자를 초빙하는 방식을 채택하는데, 빈 필 단원의 개인기는 너무나 탁월하며 결속력 또한 강해 어떤 지휘자가 와서 지휘하더라도 최상의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들은 여자 단원을 공식적으로 두지 않았었는데, 이는 명실공히 여성 차별이라고 하여 세계 여성단체로부터 항의를 받아 최근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이와는 반대로 베를린 필은 상임 지휘자를 두고 있는데, 베를린 필을 거쳐 간 역대 지휘자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세계 최고의 지휘자였다. 단원의 입단에서도 빈 필에 비해 굉장히 열려 있어, 독주 기량이 뛰어난 단원들이 널리 포진하고 있다.
빈 필과 베를린 필, 베를린 필과 빈 필! 이 두 악단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선의의 관계를 유지하며 ‘음악적 우정’을 돈독히 다져오고 있다. 만약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면, 베를린 필하모닉의 홈그라운드 ‘베를린 필하모닉 홀’과 빈 필의 홈그라운드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에서 이들의 연주를 만나보는 건 어떨까?
정승용 지휘자•작곡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