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이 늘어난다

조선을 세운 것은 이성계이지만 실제적으로 조선을 설계한 사람은 정도전(1342~1398)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고려 말 9년간의 유배와 방랑으로 뼈아픈 세월을 겪었다. 그가 전라도 나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어떤 늙은 농부를 길에서 만나 꾸지람을 들었다. “당신들은 백성의 삶은 외면하고 녹봉만 축낸다”는 것이다.

당신들(지도자) 은 이렇게 백성이 고통을 겪는 데도 이를 돌보지 않고 월급만 타 먹어 나라 재정을 축낸다는 질책이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백성의 고달픈 삶을 목격했지만, 산골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게 보이는 이들 농민도 정치가 잘 되는지, 엉망인지를 꿰뚫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국가도 이들 백성의 마음, 곧 신뢰를 잃으면 그 순간 무너져 버림을 깨닫고 1383년(고려 우왕 9년) 함경도에 있는 이성계를 찾아가 새 나라를 세워야 할 당위성을 설계한다. 조선 건국의 첫 걸음이다.

요즘 ‘조국 장관 사태’로 나라가 온통 ‘불난 집’ 처람 시끄러운 데 그 시끄러움 속에 우려스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어 나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이 무려 3만 3천5백94명에 이르고 있다. 예년의 6배이며 10년내 최고라는 것이다. 정부는 매년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부으며 출산을 독려하고 있는데 오히려 1년에 3만 명이나 빠져 나가서야 하겠는가?

이민은 여전히 미국이 가장 높지만, 최근에는 태국, 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 이민도 부쩍 늘고 있다.

태국은 80만 바트(한화 3천만 원) 이상을 3개월 정기예금하거나 월 6만5천바트(한화 246만 원) 의 수입이 보장된 50세 이상이면 이민이 가능하다. 그리고 말레이시아도 ‘세컨드 홈’이라는 정책을 내세워 예치금 1억 5천만 원만 내면 10년 장기 비자를 받을 수 있고 이 예치금은 나중에 환급받는 조건이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베트남도 비슷한 여건. 이민에 못지않게 우려스러운 것은 기업의 한국 탈출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것을 보면 올 2분기 해외직접 투자는 150억 1천만 달러로 지난해 보다 13.3%가 증가했지만 기업의 국내 투자는 올 2분기 149조 6천억 원으로 1년 전 보다 0.4% 줄었다.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기업이나 기성세대만 아니라 젊은 청소년에게도 비슷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것을 보면 훗날 해외 이민을 고려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36%나 되었다. 참으로 놀랄 숫자다. 이미 일본에는 우리 젊은이들의 취업자가 7만 명에 이른다는게 일본 후생성의 발표다. 여기에다 유학생들을 포함하면 우리 젊은이들이 15만 명 상당에 이를 것이란 보도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떠나고 싶어 하는가?

이에 대해 이민을 준비하는 어떤 사람은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취업 등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 경쟁사회, 52시간 근로 규정, 조국 사태에서 보는 증오와 분열, 최저임금 같은 경영 압박, 자녀 교육의 불안, 심지어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문제, 65%에 이르는 상속세와 법인세의 인상…. 이런 것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이니 어디에 살든지 자유라고 하기에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왜 우리 국민이 내 나라에서 마음 편하게 살지 못하고 외국으로 떠나야 하고, 외국에다 공장을 세우려 하는가? 정도전은 시골 농부에 꾸지람을 듣고 정치의 본질에 눈을 떴지만,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아예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는 것 같아 화가 치민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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