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떠도는 자의 노래

떠도는 자의 노래

                       -신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뿔》, 창비, 2002.

많은 시인들이 인생을 ‘길’에 비유하곤 한다. 인생에서 마주치는 길의 의미는 대개 ‘선택’과 관련되는 경우가 많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프로스트(Robert Frost)의 「가지 않은 길」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선택은 가야할 곳으로 가는, 즉 목적을 향한 결단의 행보라 할 수 있는데, 대개는 이성(理性)의 판단에 따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유랑(流浪)’의 길은 선택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가야만 하는 어떤 운명의 부름에 부응하는 것이다. 선택의 길이 정형(定型)이라면, 떠돎의 길은 무정형이다. 떠도는 사람들은 간절한 자들이고, 사랑을 아는 자들이고, 길의 운명을 예감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움으로 사방에 길을 내는 생의 유목민들이고, 세상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들이다. 

신경림 시인의 「떠도는 자의 노래」는 정겹고 쓸쓸하고 애틋하다. 어딘가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는 마음에 불쑥 길을 나서는 화자의 심정은 무엇을 향한, 규정할 수 없는 그리움들로 가득해 보인다.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놓고 온 것 같다는 생각에 눈 내리는 ‘좁은 골목’과 ‘저잣거리’를 기웃대며 ‘놓고 온 것’을 찾아 헤매는 화자의 모습은 하염없이 울컥하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내리는 눈발 속 저렇게 헤매 본 적이 있었던가? 합리적 판단이나 선택을 떠나 무작정 길을 떠난 적이 있었던가? 쉽지 않은 물음이기에 궁벽한 답만 입속을 맴돈다. 하물며, 태어나기 전부터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고, 어느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나, 저 세상에 가서도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아 또 헤매게 될 것 같다는 시인의 운명적 예감 앞에서라면, 애써 찾은 궁벽의 답조차 부끄러워진다.   

그리움의 여백(餘白)이 없다면 삶은 차갑고 황량할 것이다. 따뜻함이란 여백에서 생겨난다. 살면서, 간절한 그리움 때문에 모든 걸 때려치우고 불쑥 길을 나섰던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면 왜 그랬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Chingiz Khan)이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길을 내며 떠도는 자들만이 ‘놓고 온 것들’의 긴 사연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신종호 시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