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읽는 동시] 쓸쓸하다

엄마를 잃은 슬픔… 쓸쓸한 아빠 얼굴에 투영

쓸쓸하다

                       - 송재진

단짝 친구를 잃고

아빠 얼굴이

쓸쓸하다

풀벌레 소리마저

끊겨 버린

상강 무렵,

늦가을

한 자락 햇살이

아빠 무릎에 앉는다

잎 지는 늦가을은 쓸쓸하다. 여기에 또 하나의 ‘쓸쓸함’이 얹혀졌다. 아빠의 단짝 친구가 저 세상으로 갔다. 아이인 입장에서는 엄마를 잃은 것이다. 그런데 엄마를 잃은 저는 놔두고 단짝 잃은 아빠에 초점을 맞춰 썼다. 꼭꼭 숨겨 놓은 슬픔. 그 슬픔을 쓸쓸한 아빠의 얼굴로 대신 썼다. ‘풀벌레 소리마저/끊겨 버린/상강 무렵’. 온갖 소리가 끊겨 버린 그 고요가 쓸쓸하다 못해 무섭다. 올 가을에도 예외 없이 세상을 뜨는 사람들로 장례식장이 붐빈다. 그저께 떠난 사람은 고교 친구다. 30리 길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전거로 통학했던 친구. 비나 눈이 오는 날엔 흠뻑 젖은 교복을 벗어 말렸다가 도로 입고 귀가하던 친구였다. 시를 좋아하고 노래를 잘 불렀던 친구였지만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친구. 그를 떠나보내며 저 세상에서는 좋아하는 시와 노래의 삶을 살라고 빌었다. 「쓸쓸하다」, 엄마 잃은 슬픔을 단짝 잃은 아빠의 얼굴로 슬쩍 바꿔치기한 아이의 마음이 자못 어른스러움을 보여주는 동시조((童時調)다. ‘늦가을/한 자락 햇살이/아빠 무릎에 앉는다’. 여기서 ‘햇살’은 아이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늦가을에 썩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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