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후손들 1천년 전 ‘군선’ 깨워… 정체성 찾기 심혈
지난 7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롬 오래된 마을인 감라스탄. 유럽 전통 도시라는 것을 보여 주 듯 식당, 커피숍 등 상당수 건물이 지어진 지 12~13세기라는 것을 알리는 깃발을 내걸며 영업하고 있었다. 스웨덴 자부심인 알프레드 노벨의 박물관도 건립된 감라스탄에서 서양 중세시대가 시작되기 전 활약한 바이킹 행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바이킹 시대 문자였던 룬문자를 돌에 새겼던 ‘룬스톤’을 초석으로 그 위에 건물을 짓거나, 바이킹 음식 전문식당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감라스탄은 스웨덴의 바이킹 문화를 현재로 끌고 나와 역사 마케팅을 펼치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바이킹족은 스웨덴을 비롯해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정착해 생활한 노르만 민족이었다. 대략 8~11세기 기간 농촌공동체 생활을 유지했다가 이웃 국가들과의 교역을 통해 탈 농촌화를 가속화 했다.
바이킹의 해외진출(혹은 침략)은 영국은 물론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그리고 북미에 이어 러시아까지 무역 원정에 나서는 등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전형적 바이킹 배인 ‘롱십’이라는 군선에 의존해서다. 이 배는 앞뒤 구분없는 구조이지만 선형과 선체 구조가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뱃머리는 용맹성을 갖춘 동물머리를 장식, 그 위용을 과시했다.
■ 1천 년 전 바이킹 군선을 깨우다
노르웨이, 덴마크 등은 자신의 선조이면서 서양 군선 뿌리인 바이킹족이 사용했던 군선 복원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유럽 정복 등 세계에 미친 영향이 큰 바이킹 후손이라는 자부심을 찾기 일환으로 평가된다.
노르웨이 오슬로 소재 십자가 형태의 외관 구조를 띤 바이킹 박물관은 바이킹족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시기인 800~900년대 건조된 바이킹 배 3척을 1867 ~1904년께 인양해 복원, 수장품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발굴된 지명에 따라 배의 명칭이 정해졌다. 배 앞뒤 장식이 긴 뱀 형상을 하는 등 섬세한 조각무늬가 특징인 길이 21.6m, 5.1m, 높이 1.6m규모의 오세베르그호는 95% 원형을 유지한 채 발굴됐다. 인양 당시 두 명의 여성 인골과 함께 동물의 머리형상을 한 공예품 5개 등 유물이 출토됐다. 고크스타호는 100% 온전한 형태로 인양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아 발굴 당시 노르웨이를 크게 흥분시켰다. 길이 24m 중앙 폭 5m 양쪽 현에서 총 32명이 노를 저을 수 있는 전형적인 바이킹 선박으로 노르웨이에서 발견된 바이킹 배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드넓은 해양을 항해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건조됐다. 노르웨이 바이킹박물관 측은 “길이 18m 규모의 투네호는 이들 배 중 가장 오래인 1867년에 출토 및 보존된 최초 선박으로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덴마크 로스킬데 피요르드만에 접힌 곳에 건립한 바이킹 박물관에는 전함 등으로 사용했던 6척을 전시해 놓았으나 형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배는 3척 정도였다. 대부분 오랫동안 바다에 잠겨 선체가 크게 훼손, 인양 당시 겨우 20% 정도로 뼈대만 앙상한 채 발굴됐기 때문이다. 전투함이었던 셉베알스호는 길이 17m 규모로 20명 정도가 노를 젓고 항해하며 각종 전투를 수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덴마크는 이 배를 1969년 기록과 실증적인 검증을 거쳐 복원, 전시해 놓고 있다. 길이 30m의 하우힝스텐호는 겨우 원형만 알아볼 수 있는 구조였는데 배 길이가 30m로 60여 명의 승선이 가능했다. 2004년 복제선을 건조했다. 바이킹 박물관 측은 “1030년 무역선으로 건조된 오타르호는 복제선을 만들어 로스킬데 피오르만 주변을 항해하는 체험 선박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스웨덴, 단 한 차례 전투 없이 침몰한 바사호 333년 만에 인양, 복원
노르웨이 등과 함께 바이킹 후손 중 하나인 스웨덴은 법적으로 바이킹 배 인양을 못 하도록 규정돼 있다. 인양은 ‘축복 속의 저주’라고 부정하는데 기인한다. 대신 스톡홀롬의 스칸센 서쪽에 위치한 바사호 박물관에 침몰한 바사호를 인양, 98%까지 복원해 놓았다. 북방의 사자왕으로 불리던 바사왕조 구스타프 2세가 1625년 건조, 1628년 첫 항해에 나섰던 바사호는 전투 한번 치르지 못한 채 침몰했다. 길이 69m, 높이 52.2m, 중앙 폭 11.7m으로 64개의 함포를 달아 떠 있는 궁전으로 불렸던 17세기 세계 최대 군선이었다. 1961년 인양되기까지 333년 동안 바다에 잠겨 있었다. 1만4천500조각과 500여 점의 의복 등 당시 생활도구 등이 함께 출토됐다. 바사호 선체는 군선이 아닌 예술품에 가까울 정도로 그리스 신화 등을 기반으로 한 온갖 장식을 조각, 탄성을 자아낸다. 스웨덴 바사호 박물관 홍보담당자인 마르티나 씨에그리스트 랴르숀 씨는 “바사호는 각종 파편 4만여 조각을 17년 동안 레고 퍼즐을 맞추듯 복원했다”고 말했다.
스웨덴 스톡홀롬=김요섭기자
노르웨이 지폐에 바이킹 군선… 역사적 자긍심 높여
최근 노르웨이가 100년 만에 화폐 개혁을 단행하면서 발행된 화폐 100크로네(1만 원권)가 눈길을 끈다. 지폐 뒷면에 고크스타호를 문양으로 새겨 유통시키며 바이킹 군선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나타냈다.
고크스타호(사진)을 지폐에 새긴 이유는 이 배가 전형적인 바이킹 선박으로 콜럼버스보다 북미대륙을 500년 먼저 발견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고크스타호를 그대로 복제한 ‘드라켄하랄 호르파그레호’를 건조해 2016년 4월 옛 바이킹이 항해했던 항로대로 오슬로를 출발해 아이슬란드~그린란드~캐나다 뉴펀들랜드 등을 장장 5개월 동안 항해한 뒤 미국 시카고 국제박람회장에 도착해 당시 뛰어난 항해술과 조선술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또 다른 이유로 노르웨이 바이킹은 오늘날 유럽 무역 항로를 개척했고 라틴어를 전파하는 등 해외 원정을 통해 교역과 교류에 힘썼다고 확신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스웨덴 100년, 덴마크로부터 300년 동안 지배 및 연합형태로 속박당했다. 따라서 9~11세기 세계 최강이었던 바이킹을 자국의 역사로 삼아 나라 자긍심을 회복하는 도구가 필요했다. 고크스타호는 이에 적합한 소재였다.
노르웨이 바이킹박물관 가이드 마그러테 하브가르 씨는 “노르웨이가 바이킹 군선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국가 정체성을 찾게 해주기 때문”이라며 “아울러 미스테리한 바이킹 시대를 인양된 배를 복원함으로써 역사를 현실화하고 당시 세계 최고였다는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게 해 준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오슬로=김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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