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기도는 마지막 순서

일본의 역사연구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가 오랫동안 강성했던 이유는 시민들에게 빵과 안전을 보장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공화정이나 제정을 불문하고 로마 권력 엘리트의 최우선 과제는 시민이 굶주리지 않도록 이탈리아 또는 이집트의 밀을 확보하는 것, 그리고 안과 바깥으로 시민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일이었다.

빵과 안전은 사회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최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하였다. 좀 속되게 풀어보자면 백성은 먹을 게 있어야 나라에도 충성한다는 뜻이다. 지금도 나라 살림을 풍족하게 만들어 고르게 혜택이 가게 하는 경제와, 시민 생명과 재산, 기본권을 보장하는 안전은 대부분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두 축일 것이다.

경제와 안전은 전혀 다른 별개 요소가 아니다. 경제가 넉넉해지면 안전을 더 생각하게 되고 확보된 안전은 경제 활성화로 순환된다. 안전의 중요성은 안전 확보가 시민사회의 생명보호로 직결되는데 그치지 않고 관광과 수출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 있다. 가령 우리나라는 안전한 한국(Safe Korea)으로 세계인에게 각인되어 있다. 늦은 밤까지 돌아다녀도 위협적 상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거리, 탁자 위에 휴대전화를 놓고 잠시 자리를 비워도 분실되지 않는 카페 등에 대해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 결정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는 선명히 보인다. 가령 사고가 잦은 도로 위에 안전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전에 위험한 도로를 지목해 내는 것은 더 시급하다. 중앙분리대가 미관상 보기 싫다고 설치를 반대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행위다. 도로 위 과속단속카메라 설치를 반대하는 것 역시 그렇다. 음주운전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불법 주정차와 속도위반은 위험천만한 것으로 시민사회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된다. 태풍의 무자비함을 알면서 미리 대비하지 않음은 만용이다. 공사 현장이나 공장에서의 안전준칙 준수는 최소한의 기본이다. 차보다는 사람이, 편리함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5천870명이었다. 최근 2018년 사망자수는 3천781명으로 10년 동안 2천 명 이상 감소하였다. 한 해 2천 명 이상의 소중한 목숨을 살리게 된 것은 경찰을 비롯한 법집행기관과 지자체, 유관기관, 여러 시민단체의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지만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재난안전사고 사망자는 2만7천154명에 달하여 OECD 36개 국가 중 안전수준으로는 26위의 하위권에 속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행정안전부 등 정부에서는 제4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20년부터 5년간 재난안전사고 사망자를 40% 감축할 계획이다.

그런데 정부 주도의 정책실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의 절실한 깨달음과 실천이다.

우리의 존재가 우연적인가 필연적인가라는 질문은 철학과 과학의 첨예하고도 오랜 논쟁거리이다. 유물론자와 유신론자, 진화생물학자와 양자물리학자가 각각 다르게 대답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사회 안전을 확고히 하고자 우리는 끊임없이 궁리하고 실행해야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새삼 환기하지 않더라도 개개인 모두 안전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후에야 최종적으로 유일하게 남은 한 가지가 오직 ‘간절한 기도’여야 하기 때문이다.

김성훈  손해보험협회 중부지역본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