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군인이었다는 것은 얼핏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아테네 군인으로서 세 번이나 전쟁에 참전했다.
특히 BC 431년부터 BC 404년에 걸쳐 있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에게 결정적인 인생 전환점이 되었다.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를 했지만 철제 갑옷에 창을 든 보병으로 참전한 소크라테스는 전염병으로 많은 군인이 죽어갔고 시신들은 들판에 방치되었으며 시민들은 굶주림에 짐승처럼 돌변하는 장면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이 참담한 비극을 ‘아포리아’(Aporia)라고 정의했다.
아포리아는 그리스어로 배가 좌초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절박한 상황을 뜻한다. ‘길을 잃은 캄캄한 상태’
우리나라에서도 연세대학교 김상근 교수가 ‘대한민국의 아포리아’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EBS의 특강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세월호 침몰사건 때 선장이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하는 것을 보고 우리의 아포리아임을 생각했다고 했다.
배안에서는 시시각각 지옥 같은 절박한 상황이 조여 오는데 어떻게 선장은 배를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탈출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마비된 양심, 그 배신감,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정말 세월호 침몰 사고는 대한민국의 숨막히는 ‘아포리아’를 여과없이 보여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그 아포리아는 곳곳에서 도깨비 유령처럼 나타나고 있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소요, 이 역시 ‘길 없음’의 아포리아다.
사실 이 경우 ‘길 없음’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길이 있다.
검찰 수사를 받는 법무장관의 모양이 국민정서에 맞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안보환경도 그렇다.
북한 김정은이 우리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퍼부으며 단거리 발사체를 펑펑 쏘아 댄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얌전하고 미국 트럼프는 그것이 미국을 겨냥한 ICBM(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며 ‘김정은을 좋아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동맹국 대통령으로서 취할 자세인가? 북한의 그 단거리 미사일이 미국에는 도달하지 않지만 한반도 전체가 위협이 되는 데 말이다.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로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도 우려와 불만을 계속 표출하는 것도 우리 안보가 고립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친구는 도대체 누구인가?
경제 상태는 더욱 우려스럽다.
65세 이상의 노인 일자리를 제외하고 취업상태는 나아지질 않는다. 수출 전망은 더욱 어렵다. 강력범죄는 사람을 죽이고도 모자라 시신을 무자비하게 훼손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정치, 안보, 경제, 사회, 교육… 정말 모두가 막혀 있는 아포리아인가?
대한민국의 아포리아를 지적한 김상근 교수는 아포리아 시대, 지도자는 거울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매일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오바마 전 미 대통령 역시 거울을 통해 자신은 물론 등 뒤에 비치는 미국을 이끈 지도자들의 초상을 보면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자문했다는 것이다.
역시 오늘 대한민국의 아포리아시대 지도자들은 거울 앞에 서서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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