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인간의 본성은 원래 이기적인 것이다

아기는 태어난 이후부터 본인의 본능에 충실한 반응을 보인다. 배고프면 울고 기분이 좋으면 웃는다. 자신이 배고플 때 음식을 빼앗아 가면 바로 울면서 분노를 표현한다. 원숭이 실험에서도 배고픔이 극도로 심한 상황이 되면 부모원숭이가 아기원숭이보다 자신들의 배고픔을 우선시한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유명한 생체실험에서도 이는 드러났다. 모성애가 가득한 엄마에게 아기를 안겨서 방으로 넣었다. 그 후 방을 뜨겁게 달군다. 엄마들은 최대한 아기를 보호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모성애가 발휘된 것이다. 그런데 거의 죽음 직전의 상황까지 가면 엄마들이 혼미한 상태에서 아기를 바닥에 놓고 위에 올라섰다. 모성애도 강력한 본능이지만 자기보호 본능이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이런 반응들을 볼 때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자신의 본성을 발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은 이런 본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반면 인간은 동물에 비해 전두엽이 더 발달되면서 판단력, 계산능력, 자기조절능력 등 이성이 발달했고 이런 능력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했다.

그런데 전두엽의 역할은 자신의 본성을 이겨내는 쪽으로만 발달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 전두엽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논리를 개발하는 쪽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논리가 마련되면 스스로 마음에 방어기제가 만들어져 자신의 이기적 행동을 합리화한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자신도 모르게 선택적 비집중(selective inattention)을 한다. 마음에 불편한 어떤 행동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고 간과함으로 그 일이 발생한 것 자체를 의식적으로는 잘 모르는 방어기제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을 합리화하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채 살아간다. 법과 제도, 종교, 철학, 사회윤리는 이런 인간의 본성을 경계하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 법과 제도이다. 선을 넘는 이기주의는 처벌과 규제를 통해 경고하는 것이다. 반면 종교나 사회윤리 등 사회적 가치관은 인간의 본성을 이겨내기 위한 명분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전두엽이 본성을 합리화하기보다는 이겨내고 승화시키는 쪽으로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주로 논리만 만드는 전두엽에 강력한 감정을 연결해 주어야 한다. 감정은 뇌의 측두엽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 측두엽이 자극되어야 한다. 측두엽이 전두엽과 연결될 때 감정과 관련된 논리와 이성이 만들어진다. 분노가 자극되면 이성은 그 분노를 표출하는 쪽으로 만들어진다.

반면 자신이나 누군가에 대해 감동, 사랑, 포용 등의 긍정적 경험을 하면 전두엽은 이런 감정에 대한 행동을 하는 쪽으로 힘을 발휘한다. 사회가 이런 분위기가 되려면 중요 리더들이 이런 감정들을 사회구성원들에게 부어주어야 한다. 사랑, 용서, 포용, 희생의 감정을 부어주어야 한다.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이 그러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러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죽이려 했고 핍박했던 정적들을 권력을 잡은 뒤 예상과 달리 포용하고 용서했다. 조선시대의 정조대왕은 자신을 수차례 독살하려 했던 노론들을 이들도 조선을 구성하는 한 축이라며 용서했다. 자신의 본성을 이겨내고 승화시키면 이는 주변으로 퍼진다. 이것이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하면 이는 문화가 되고 이런 문화가 뿌리 깊게 형성되면 이는 사회의 성숙과 발전으로 연결된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면서도 힘든 이유이기도 하다.

정재훈 한국정신보건연구회 정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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