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보복은 한일 경제전쟁으로 가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친일파’, ‘매국노’ 등 시대착오적인 편 가르기 단어가 난무하고 있다. 1871년 미국 함대의 강화도 침범으로 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웠다.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오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고, 화친의 주장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 새겼다. 얼마 되지 않아 일본에 나라를 뺏겼다. 위정자가 척화비 대신 국력을 키웠다면 비극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멀쩡한 국민을 토착 왜구·친일파라며 일본에 팔아넘기고, 종북·친북이라며 북한에 팔아먹고 있다. 진영끼리 나뉘어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상대방을 못 죽여 안달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당연히 위정자의 책임이다. 국가의 분열을 이대로 두고 볼 일이 아니다.
링컨은 성서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분열하는 집은 결코 설 수 없다”고. 친일파, 매국노도 모자라 일본의 수출 규제와 관련해 대기업에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우원식 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삼성전자 같은 반도체 회사가 일본 업체를 1위로 띄워 올리는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고 박영선 중기벤처부 장관은 “국내 중소기업도 불화수소를 만들 수 있는데, 대기업이 안 사주는 게 문제”라고 했다. 대통령도 “일본의 협력에 안주하고 변화를 적극 추구하지 않았다”고 쓴소리를 보탰다.
세계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각국에서 최적의 품질과 성능의 소재와 부품을 가져다 쓴다. 공급 체인망의 전 공정을 다 갖춘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애플이 미국산 반도체를 쓰지 않는 이유로 트럼프가 타박한 일은 없다. 글로벌 분업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이자 말로는 잘 싸우라면서 너희들이 잘못이라는 대기업 원죄론이다. 밖의 창보다 안의 비수가 더 무섭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 52시간제 졸속 시행, 검찰 수사의 일상화, 법인세 인상, 말뿐인 규제 완화 등등. 이게 오늘 우리 기업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소모적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누가 이번 한일 갈등으로 이득을 얻는지 냉정히 따져보자. 전쟁에서 이기려면 3배의 공격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싸워 이길 자신이 없으면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다.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공식 제안해야 한다. 일본이 거부하면 국제적 명분이 생기고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광복절을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회담 전제 조건으로 우리 정부가 대법원 판결은 어쩔 수 없다고만 고집하면 해결은 어렵다. 정부가 나서서 일본의 징용기업, 한국 기업(일본의 청구권 자금으로 출범한 기업)이 갹출해 기금을 만들고 부족하면 우리 정부가 보충해서 해결할 테니 일본도 협조하라고 주문해야 한다. 여론전도 친일파도 죽창가도 불매운동도 해법은 아니다. 우리의 실력을 제대로 알고 정책을 펴야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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