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사익과 공익 사이, 집단이기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시민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문화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한다. 밀집된 상가거리, 외부와 소통이 없는 초등학교, 아파트관리를 둘러싼 복잡한 의견들, 그리고 아파트 값에 대한 높은 관심과 거침없는 행동 등등. 이 중 요즘 많이 생각하는 문제가 집값 제일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는 아파트 값에 대한 관심이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 값을 올려주는 사업이나 정책은 무조건 좋고, 그 반대는 나쁜 사업이고 정책이다. 심지어 그 나쁜 사업은 저지하여 가격 하락을 막아야 한다. 모여서 행동한다. 그 행동을 조직하고자 섬뜩한 선동도 주저함이 없다. 쓰레기 대란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은 알 바 아니고, 우리 동네에 소각장이나 재활용시설이 들어오면 안 된다. 장애인 가족의 아픔은 그들의 문제일 뿐 집값을 떨어뜨리니 용납할 수 없단다. 필자가 사는 동네도 몸살을 심하게 앓았던 적이 있다. 몇 년 전 인근 지자체에서 장례시설을 짓겠다고 하니 마을 전체가 해골이 그려진 무서운 현수막으로 덮인 적이 있었다. 아이들 등교도 거부하는 행동을 보면서 안쓰러울 뿐이었다. 사익을 넘어 집단의 이익으로 나갔으나 철저하게 집단 안에 생각이 멈추어져 있으니 더 무섭다.

요즘 거리 곳곳에 지방의원이나 국회의원들이 이름과 함께 그 활동을 자랑하는 현수막을 걸어 놓는다. 주민의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그 수고에 박수를 보내고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거북한 내용이 적지 않다. 얼마의 예산을 따와서(?) 무슨 시설을 지었다는 자랑이 점점 많아진다. 80억 확보, ○○학교 체육관 건립, 50억 확보 ○○동 복지관 설치 등등. 유권자인 지역주민을 위해 주민이 원하는 시설이나 민원을 해결할 책임을 능력껏 수행하고, 그 성과를 주민에게 알리는 활동은 자연스런 정치과정일 것이다. 다만, 우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좀 더 큰 공동체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한정된 예산을 나누어 분배하는 일이 정치의 꽃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나와 우리 동네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어 의정 활동을 하는듯하여 불편하다. 단기적으로 보이는 시설이나 인프라 유치만이 자랑거리가 되고, 긴 안목으로 추진하는 정책이나 사업이 뒷전으로 밀려나지는 않는지 우려된다.

다른 한편으로 동네 민원을 제기하고 여론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대해서도 잘 살펴봐야 한다. 동네 일에 자주 나설 수 있어 목소리를 높여 왔던 사람들의 민원도 중요하지만, 생활에 파묻혀 동네 일에 나설 수 없는 주민들의 어려움도 함께 파묻혀 뒷전으로 밀리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마을 일은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 있고, 일정한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 주도하는 현실이다 보니,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나 청년과 청소년의 의견을 반영할 통로가 없다. 생활이 어려워 동네 일에 나설 수 없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소수 의견이 과잉으로 대표되고 있다. 무릇 정치가 사회적 약자를 감싸 안아 소외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면, 좀 더 세심하게 마을 주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렴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을에서조차 다수 주민의 이익보다는 소수 적극적 주민의 이익이 우선되지는 않는지 살피고, 또 살펴볼 일이다.

팽배한 집값 제일주의에 갇혀 있는 시민의 생각도, 우리 동네 울타리에 안주하는 정치인들의 업적 자랑도,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수의 과잉 대표성도 사익과 집단이기에서 벗어나서 올바른 공익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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