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읽는 동시] 지구본 때문에

머나먼 땅으로 돈벌러 간 아들
지구본 보며 걱정하는 할머니

지구본 때문에

               - 이경애

-일 년만 일하고 올게요.

아들네가 떠난 뒤

하루에도 몇 번씩

지구본을 돌리는 할머니

일 년 내내 덥다는 나라

돋보기를 쓰고도

찾기 힘든 나라

-이놈은 왜 이리 삐딱하게 생겼누?

지구본따라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할머니.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잘 사는 데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남 탓하지 않고 악착 같이 땀을 흘린 덕분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동시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가족을 이끌고 머나먼 이국땅으로 돈 벌러 간 노동자 가족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심정을 담았다. ‘-일 년만 일하고 올게요./아들네가 떠난 뒤/하루에도 몇 번씩/지구본을 돌리는 할머니…’. 지구본을 가져다 놓고 아들이 일한다는 나라를 찾는 할머니. 눈이 침침한 할머니는 돋보기를 쓰고도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왜 지구본은 요따위로 삐딱하게 도는지. 할머니는 답답하기만 하다. 이야기로만 보자면 한 편의 동화를 써도 충분할 만하다. 그런 이야기를 단 몇 줄의 시로 지었다. 꼭 필요한 뼈대만을 추려 한 채의 집을 완성했다. 그러고도 부실하기는커녕 얼마나 튼튼한가. 시인은 남이 갖지 못한 요런 재주를 가졌다. 뚝딱, 뚝딱! 언어 몇 개 가지고도 건축미를 자랑한다. ‘-이놈은 왜 이리 삐딱하게 생겼누?/지구본따라/점점/한쪽으로 기울어지는 할머니.’. 지구본과 할머니가 보여주는 이 ‘관계’의 아름다움이 이 동시의 백미다. 그리고 이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독자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준다. 참 따뜻하고 재미있는 시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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