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레트로피아’를 넘어 ‘커런토피아’를 꿈꾸며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전성기(全盛期)가 있다. 그 어떤 때보다 행복하였고 희망이 가득 찼으며 다가올 미래의 그 행복을 자신한다. 그리하여 일상의 삶 속에서 자신을 위한 미래의 유토피아가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현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현대사회의 우리들은 과거의 회귀(回歸)를 꿈꾸면서 현실에서의 일상을 넘어 미래의 유토피아를 꿈꾸는데 주저하고 있다. 정치세계에서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캠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로 표심을 자극했고 당선에 이르게 된다.

영국은 2016년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 위한 총선거 실시와 관련 ‘브렉시트’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극우정치인 나이젤 패라지는 ‘내 나라를 돌려 달라(My Country Back)’이라는 캠페인 구호로 삼기도 했다.

지난해 1월 타계한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유작 ‘레트로피아-실패한 낙원의 기원’에서 ‘회귀(回歸)’라는 대명제에 천착(穿鑿)해 현대인들이 왜 과거로의 회귀를 희망하고 심지어 과거의 그 아련한 추억은 아름다운 향수가 되어 현실의 나 그리고 우리, 사회를 인식하지 않고 과거의 추억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지에 대해 고찰한다.

중국의 사진작가인 리웨이의 사진작품 중에 ‘29층에서의 자유(29 levels of freedom)’라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29층의 고층빌딩 창밖으로 한 남자가 떨어지려 하고 있고 사람들은 이 남자를 구하기 위해 창밖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현대 중국 사회의 시민들이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는 중국인들의 솔직한 자화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여기에서 실존적인 위기란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 즉 서로 융합돼 있고 함께 했던 공생의 가치가 무너지면서 초(初)개인화 돼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불안과 혼돈 등의 은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로의 회귀, ‘레트로피아’ 그 아련한 향수가 현실에서 다시 한 번 이뤄지기를 소망하는 우리의 바람은 아마도 변덕스럽고 불안정하며 불확실한 현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레트로피아’의 문제점은 현재라는 기반에서 우리의 관찰이 결여된 채 더 이상의 미래의 가능성을 꿈꾸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05년, 고종황제의 칙령으로 탄생하게 된 적십자는 지난 114년 동안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지키고자 한결같은 마음으로 달려왔다.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도 지난 1982년 개사 이래 현재까지 인천 300만 시민들과 함께 지역 주민의 건강과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버팀목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지 과거의 영광과 역사로 회귀가 아닌 300만 인천시민들과 함께 현재를 함께 바로 살면서 미래를 꿈꾸는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의 소망인 셈인 것이다.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는 인천시민들과 함께 일상의 겉과 속에서 의미를 엿보는 일 ‘호모 포에티구스’적인 삶의 가치에 머뭇거리지 말며 과거로의 회귀 ‘레트로피아’를 넘어 현재를 통한 미래의 가치와 꿈을 그리는 ‘커런토피아’를 기대해 본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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