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용의 THE클래식] 작품번호 속에 숨겨진 비밀

몇 일전 필자는 한 독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필자가 종종 받는 질문이기도 하다.

마음먹고 클래식 음악 한곡을 들어보려 할 때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일 것이다. 바로 곡목 뒤에 붙어 있는 이상한 알파벳이다. <Op> <BWV> <D> <Kv> <Hob> 등등. 오늘은 이 기호들에 대한 의문을 모두 풀어보려 한다.

베토벤 <교향곡 5번 Op.67>이라든가, 바흐 <골든베르그 변주곡 BWV988>, 슈베르트 <소나타 D.384>,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 15번 Kv.287>, 하이든 <트럼펫과 오페라를 위한 협주곡 Hob.Ⅶ e-1> 등에 나오는 <Op> <BWV> <D> <Kv> <Hob> 같은 이상한 기호들은 다름 아닌 그 작품의 ‘작품번호’이다. 남긴 곡들이 워낙 많은 까닭에 그것들을 일일이 이름을 지어 부를 수가 없어 간단하게 번호를 매긴 것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이름 외에 자신의 번호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작품번호는 일반적으로 <Op>를 많이 사용한다. <Op>는 라틴어로 ‘작품’을 뜻하는 Opus의 줄임말로 작곡된 순서에 따라 <Op> 뒤에 번호를 붙인다. 그런데 모든 작곡가의 작품에 <Op>만 붙는다면 우리가 덜 혼란스러울 텐데, 특정 작곡가에는 또 다른 기호가 붙으니 그 이유는 왜일까?

그것은 작곡가 스스로가 자기 작품을 분류해서 번호를 붙이지 않고, 후세의 음악학자가 특정 작곡가의 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나름대로 번호를 붙여 정리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런 특정 작곡가의 특정 기호를 보기 좋게 정리해보기로 하자.

‘바흐 작품번호’라 부르는 <BWV>는 바흐의 작품에 붙는 기호로 독일어 ‘Bach-Werke-Verzeichnis‘의 이니셜을 딴 기호이다. 음악학자 슈미더(Wolfgang Schmieder)가 정리한 것이다.

‘쾨헬 번호’라 부르는 <Kv 또는 K: Koechel-Verzeichnis>는 모차르트를 연구한 학자 쾨헬(Koechel)에 의해 만들어진 기호이다.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였던 쾨헬은 평소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너무 존경한 나머지 그의 방대한 작품을 수집하여 정리하게 되었다.

‘도이치 번호’라고 부르는 <D>는 슈베르트의 작품을 의미 하는데, 오스트리아의 음악학자인 도이치(Otto Deutsch)에 의해 만들어졌다.

‘호보켄 번호’라고 부르는 <Hob>는 하이든의 작품번호에 적는다. 독일 출신의 전기 작가 호보켄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밖에 <WoO>란 번호가 있는데, 베토벤의 유작에 한해 이런 기호를 쓰고 있다. ‘작품번호가 없는 작품’이란 뜻의 약자이다. 베토벤의 작품 중에 우리가 널리 부르는 가곡 <그대를 사랑해 WoO.123>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이밖에도 헨델의 작품번호는 HWV(Handel-Werke-Verzeichnis)로 표기된다.

이제 ‘작품번호’에 담긴 의문이 조금 풀리셨나요? 자, 그럼 바흐의 곡부터 큰 소리로 읽으면서 한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승용 지휘자ㆍ작곡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