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유가사상의 전통을 다시 부른다

올해도 중국언어문화를 배우려는 학생들 지도차 산동(山東) 제남(濟南)에 머무르고 있다. 어느덧 삼 년째다. 학생들 연수받는 사이 시간을 내어 산동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시 찾았다. 제남이 산동의 성도(省都)라 산동성을 대표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여기에 있다. 경기도 박물관과 미술관이 수원에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올 때마다 들렸으니 벌써 이곳도 세 번째이다.

같은 박물관을 일정한 기간을 두고 찾다 보니, 전시물이 조금씩 바뀌는 걸 보고 중국 사회의 변화를 읽어볼 수 있다. 이번 방문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유교를 중심으로 한 전통 사상의 강조이다. 산동 박물관 13번 전시실의 전시내용을 바꾸어 새로 <만세사표(萬世師表)>라 이름 짓고 공자와 유가사상을 설명하는 전시관으로 꾸며 놓았다. 박물관 표지판을 새로 고친 흔적이 여실하다.

들어가자마자 공자의 상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 있고, 사마천이 <사기, 공자세가>에서 공자를 ‘높은 산’과 ‘큰 길’에 비유한 구절이 빛나고 있다. 본격적인 첫 전시물은 시진핑 주석이 유가사상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글이다. 유가사상이 중국민족의 핵심문화일 뿐 아니라 세계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유산이라는 것이다. 국가 주석의 글이 제일 먼저 전시된 것으로 보아 정부가 나서 유가사상을 중심으로 사회질서를 잡아가고자 함을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의 변화를 중국 정부가 이끄는 이유는 사회주의 사상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사회도덕 측면의 발전을 도와주는 것이 유가사상이기 때문이다. 그 사상에 담긴 효제(孝悌)의 정신, 농경사회 가족관계에서 발전시킨 수직적 질서의 본인 효와 수평적 질서의 본인 제의 정신이 공산당 중심의 중국 공동체 질서를 위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유가사상은 실용적이고 이성적이어서 중국이 걸어온 개혁개방의 기조에도 잘 맞는다. 백성의 살림이 일정해야 인의의 마음도 유지된다(恒産恒心)는 맹자의 말은, 경제가 발전해야 도덕,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중국 개혁개방의 논지와 일치한다. 또 유가사상이 지닌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논하지 않는 태도는 사회주의 국가가 근거로 삼는 유물론과 충돌하지 않으니 더 안성맞춤이다. 유가사상은 하늘의 뜻을 이야기하지만 절대적이고 인격적인 신을 이야기한 바 없다. 그러니 종교는 아편이라는 종래의 마르크시즘과 갈등할 일도 없고, 신앙의 열정이 현실 정치를 압도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시주석의 글에도 유가사상이라 하지 유교라고 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은 거대한 중국의 사상도덕적 안정을 위해 공자를 다시 강력하게 소환하고 있는 셈이다. 마치 한나라가 유학을 국학으로 채택하여 천하를 안정시켰듯이. 지난 칼럼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중국은 이미 유가사상 중심의 관료제 국가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덧 중국에서 말이 좀 통하려면 마르크스를 논하는 게 아니라, 공자와 맹자를 인용하는 게 빠른 방법이 되어가고 있다. 유가사상을 교과의 일부분, 생활 일부분으로 배우는 미래세대가 자랄수록 그런 현상은 더 두드러질 것이다.

그러고보니 산동미술관에서도 들어서자마자 건물 2층 높이의 공자 조각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뿐인가. 제남 원보원에는 중국에서 가장 큰 공자 조상(彫像)이 서 있다. 건물 10층 높이는 돼 보인다. 중국에 이보다 큰 마르크스 동상이 없고, 아마 이보다 큰 모택동 동상도 없을 듯하다. 이 거대한 동상의 크기가 바로 오늘 중국에서 공자가 가지는 위상 자체이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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