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日 경제보복… 우리 ‘골키퍼’는 어디 있는가

‘그러나 또한…’(but also…)이것은 일본인이 일상 생활에서 제일 많이 쓰는 말이다.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정점으로 치닫던 1944년 미국 국무부가 ‘도대체 일본인은 어떤 사람인가’를 풀기 위해 당시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 교수(1887~1948)에게 연구 용역을 의뢰했었다.

어떻게 폭탄을 안고 비행기를 몰아 미군 함대에 자폭하며 ‘천황 만세!’를 외치는가? 또 어떻게 다도(茶道)를 숭상하며 그 은은한 향기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이 무자비한 전쟁을 벌이고 잔인한 생체실험을 하는가? 이런 일본인에 대해 미국은 본격적으로 알고 싶어했던 것이다.

연구를 의뢰 받은 베네딕트 교수는 일본을 한 번도 가본 일이 없었지만 인류학적으로 연구 보고서를 냈는데 그 제목이 ‘국화와 칼’(Chrysanthemum and the sword)이었다.

이 보고서 속에 일본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그러나, 또한…’이라고 소개했다. 애매모호함, 이중성, 겉과 속이 다름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보고서 제목이 ‘국화와 칼’ 자체가 그런 뜻을 내포하고 있다.

손에는 국화를 들고 있지만 허리에는 칼을 차고 있는 모습-국화는 ‘겉 모습’(다테마에)이고, 허리의 칼은 ‘속 마음’(혼네)라는 것이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이와 같은 일본의 실상(實像)을 경험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오래 동안 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2013년,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캐럴라인이 주일 대사로 부임해 오면서 일본의 ‘국화와 칼’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케네디 대사가 와카야마현 다이지에서 일본인들이 귀여운 돌고래를 잔인한 방법으로 잡아 그 고기를 즐기는 축제를 보고 일본 정부에 항의를 했다. 와카야마현 다이지 돌고래 사냥은 일본내에서도 제일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케네디대사의 항의를 받고 ‘일본 고유의 전통’이라는 이유로 거부했으나 전 세계적으로 일본 돌고래 사냥을 규탄하는 캠페인이 벌어 지자 2015년 이를 중단했다.

일본은 지난주부터 우리 나라에 대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품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 3종의 수출 규제에 나섰다. 이렇듯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고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도 심각하다. 우리 경제 급소를 찌른 것.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처음 있는 ‘경제 충돌’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날까? 일본은 한국과의 경제충돌에서 앞으로 전개될 그들의 매뉴얼이 여러 가지로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에 대한 준비없이 일을 당하고만 있다. 그저 답답하다. 강경화 외부장관은 지난 2일 일본 경제 보복에 대해 ‘앞으로 상황을 보면서 후속대책을 연구해야 할 것 같다’고 했고 이에 앞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이것으로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음은 물론이다. 왜 우리는 강제징용의 대법원 판결 이후 벌어 질 일본의 대응에 대해 매뉴얼을 만들지 않았을까?

일본에는 한국을 연구하여 먹고 사는 사람이 8천명이나 된다고 하는 데 우리는 과연 얼마 만큼 일본을 알고 있는가? 전에는 우리 외교부에 ‘제네바 사단’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FTA등 대외 협상의 베테랑들이 포진하고 있었다는 데 요즘 외교부는 썰렁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지금이라도 ‘국화와 칼’을 확실히 파고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무자비하게 돌고래 사냥을 즐기는 그들을 대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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