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6·25, ‘잊혀진 전쟁’에서 ‘꼭 기억해야 할 전쟁’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6·25 참전 유공자 및 가족 182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6·25는 비통한 역사지만 북한의 침략을 이겨냄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공식 행사에서 6·25전쟁의 침략 주체를 ‘북한’으로 규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6일 현충일 추념사 때 김원봉 띄우기로 촉발된 이념 논쟁을 봉합하고 통합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6·25전쟁’은 거론하지 않고 ‘한국전쟁’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정부의 6·25 공식 명칭은 ‘6·25전쟁’이다. 6·25전쟁을 지칭하는 용어는 1969년부터 지금까지 동란→사변→남침→전쟁으로 바뀌었다. 국군 통수권자로서 극히 당연한 대통령의 ‘남침’ 언급이 반가우면서도 그동안 대통령이 보여준 국가관이나 안보관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언급이 진정성을 갖추기 위해선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요즘은 남침 관련 소련의 기밀문서 등으로 전혀 힘을 받고 있지 못하지만, 오래전부터 학계 일각에서 ‘북침설’ 내지 ‘남침유도설’을 주장해 온 것이 사실이고 ‘한국전쟁’이란 남의 전쟁처럼 들리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한 사례도 많았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번 표현은 극히 타당하다. 문 대통령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호국영령들에게 보답해야 할 일은 6·25전쟁의 명칭과 책임소재에 대한 확고한 태도와 아직도 땅 속에서 60년, 창고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낸 무명용사 9천명에 대한 예우와 추모, 어린 학생들에 대한 정확한 교육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같은 애매한 용어로 국민을 헷갈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 용어는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책임이 희석된 표현이며 여러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사건이나 사물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는 상징이기에 신중하고 명확해야 한다.

최근 우리의 안보의식과 대응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태에서 보듯이 청와대, 군의 태도는 한심함을 넘어서 과연 국토를 수호할 의지가 있는 집단인지 의심케 한다. 우리는 각종 사건 사고로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하면서도 수십만 명이 죽고 다친 6·25전쟁의 비극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졌다. 모두들 입만 열면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말하지만 평화도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

6·25전쟁과 관련한 최고의 책이라고 평가받는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의 저자 페렌바크(6·25 참전장교)는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국민은 정신적으로 항복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대통령은 이번 행사에서 북한의 남침을 강조하면서 “6·25전쟁 희생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었다”며 한·미 동맹을 부각시켰는데, 레토릭은 좋지만 아직도 틈만 있으면 맥아더 장군 동상을 훼손하려는 세력들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보이는 것이 미국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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