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중 김원봉 띄우기는 계산된 도발이며 역사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김원봉 재평가는 그동안 좌파 진영에서 간헐적으로 제기해온 어젠다 중의 하나였다. 대통령은 이날 작심한 듯 ‘김원봉은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해석될만한 발언까지 했다. 문 대통령의 역사인식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의 발언이 엄청난 이념 대결을 초래할 것을 몰랐을 리 없다.
왜 알면서도 무리수를 뒀을까. 대통령의 노림수는 그동안 줄기차게 추진해온 우리 사회의 주류세력 교체, 100년 집권 전략과 맥이 닿아 있다. 친일 청산과 좌파 독립 운동가에 대한 예우를 통해 역사를 바꾸고 내년 총선 때까지 이 같은 프레임을 밀고 나가려 하고 있다. 국가 지도자의 책무인 국민통합과 국군 통수권자의 신성한 의무인 ‘국가 보위’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그동안 국민들은 대통령의 ‘친일 청산’ 발언과 ‘애국을 통한 통합된 사회’ 염원이 나름 진정성을 가진 줄 알았다. 현충일 발언을 보니 그러한 용어들이 권력 투쟁에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음을 알게 됐다. 현충일은 6·25 남침에 공을 세워 김일성으로부터 훈장 받은 김원봉을 추켜세우는 날이 아니다.
내년 총선은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게는 사활이 걸린 일이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죽을 쓰고 있지만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국정의 무능과 무책임이 드러났고 경제와 안보는 파탄 지경이다. 결국, 남은 것은 김정은 쇼와 역사전쟁을 통한 의도된 혼란이다. 김원봉은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대통령은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하나 보수 진보의 갈등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편 가르기’를 통한 국민 분열과 상대방 죽이기다.
분열의 정치를 청산하고 국민 통합으로 가겠다는 것은 말만으론 되지 않는다. 통합된 사회를 지향한다면 그동안 해 왔던 국정 운영에 분열을 조장하는 요소가 있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편 가르기와 이념·역사전쟁, 상대방을 적폐와 부역자로 몰아붙이면서 국민 통합을 얘기한다면 누가 공감하겠는가.
올해 100세가 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흑백논리가 만든 우리의 불행한 근현대사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아 진리를 찾고 그 진실을 토대로 가치판단을 내리는 책임”이라고 말했다.
혹자는 지난 70여 년 우리 역사를 분단체제니 뭐니 하면서 탄생해서 안 될 흑역사라고 떠드는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공산체제가 아닌 것에 감사하고 우리를 목숨 바쳐 지켜 준 현충원의 영혼들에게 눈물로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현명하고 지혜롭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우리의 역사를 왜곡되게 만들고 이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려는 ‘역사전쟁’ 도발자들은 ‘국민의 심판’을 받을 준비가 돼 있는지 묻고 싶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