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하는 신대방동 바로 건너 대림동 인근에는 아주 오래된 순댓국집이 있다. 깔끔하고 뽀얀 요즘 순댓국과 달리 좁은 골목 안쪽 깊숙이 위치한 이 식당은 입구 50m쯤부터 구수하고 짜릿한 돼지냄새가 진득하게 풍겨온다. 처음 이 집은 방문했을 때에는 그 냄새가 쿰쿰하고 영 비위에 맞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이 냄새가 나지 않는 순댓국은 마치 냄새 없는 청국장이나 냄새 없는 홍어삼합 같아 영 허전하더라. 그래서인지 이 집의 주된 고객은 동네에 거주하는 필자 또래의 나이 지긋한 이들이었는데, 최근에는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외지의 젊은이도 많이 찾는 듯하다.
사실 이 자그마한 순댓국집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순댓국집이다. 1959년도에 창업주 할머니가 영업을 시작해 지금의 며느리 사장님까지, 올해로 60살이나 된 셈이다. 지난해에는 소상공인진흥공단(이하 소진공)에서 선정한 ‘백년가게’에도 선정됐다.
소진공의 ‘백년가게 육성사업’은 국내 시장경제 내 과도한 자영업자 비중과 빈번한 창ㆍ폐업 등 시장의 악순환 구조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소상공인 성공모델을 확산하기 위해 지난해 처음 시작된 사업이다. 도소매업ㆍ음식업에서 30년 이상 사업을 운영 중인 소상인ㆍ소기업을 대상으로 전문성, 제품ㆍ서비스, 마케팅 차별성 등 일정 수준 이상의 혁신성을 평가해 선정되고, 선정된 우수 소상공인에게는 다양한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이처럼 정부는 오래된 기업들을 선정하고 혜택을 줌으로써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소진공의 ‘백년가게 육성사업’뿐만 아니라 45년 이상 세대를 이어 운영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우수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명문 장수기업 확인제도’나 ‘100년 이상 지속된 기업’도 있다. 100년 이상 지속기업은 국가별로 장수기업에 대한 기준이 상이하기 때문에 국제비교에 주로 활용된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100년 이상 장수기업은 총 8곳으로, 일본(3만3천69개), 미국(1만2천780개), 독일(1만73개)에 비해 매우 적은 수준이다. 일본은 현존하는 기업 중 1천 년이 넘은 기업도 7개나 된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장수기업이 희박한 이유로 짧은 산업화 역사, 까다로운 상속공제제도와 높은 조세부담,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이라 치부하는 부정적인 인식 등을 꼽는다. 동시에 장수 기업을 사회적 자본으로 여기고 가족기업을 중심으로 가업승계의 전통이 뿌리깊은 독일이나 일본 등 선진국과 대비되는 부분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가업승계가 장수기업 육성을 위한 해법일까?
최근에 정부는 다양한 일자리 부흥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자체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청년 일자리의 해법으로 ‘가업승계’에 주목하고 있다. 가업승계를 단순히 부의 대물림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통해서 경제적 효과를 넓히는 데에 의미를 둔 것이다.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상속세 부담 등 가업승계를 가로막는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기업을 꼭 가족에게 물려줄 것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을 통해 기업을 키워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하여 중소기업계는 ‘임기가 정해진 전문경영인보다 긴 안목에서 장기 투자가 가능한 가족 경영의 장점도 많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서 부의 대물림은 실제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예를 들어 종업원 수 5인의 작은 국밥집의 가업승계와 50인 규모의 IT중소기업의 가업승계를 ‘청년 일자리 해법’의 관점에서 동등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가업승계 지원제도에 대하여 기업규모별ㆍ업종별로 보다 폭넓은 고려가 반영된 명확한 기준과 엄격한 규정이 필요한 이유이다.
장수기업은 오랜 업력 속에서 수차례의 불황을 극복하면서 시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와 탄탄한 재무구조와 안정적인 성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내외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부실 중소기업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우리가 장수기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라면 장수하기 위해서는 소유와 경영이 확실히 구분되고, 끊임없는 변신과 기술혁신으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용현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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