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빙속 여제 이상화 선수의 은퇴식이 있었다. 그녀는 중학교 2학년 국가대표가 됐을 때 “3가지 목표로 세계 선수권 우승, 올림픽 금메달, 세계 기록 달성이었는데 모두 다 이뤘다. 이제는 다음 목표를 생각하고 더 달리려 했지만 더 이상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 은퇴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녀가 지난 선수 생활 기간 편히 잠을 자본 적이 없고 부상과 재활과 싸우면서 올림픽 메달을 위해 자신과의 싸움, 경쟁자와의 싸움, 기록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음을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경쟁이 치열한 빙판에서 탄생한 이상화 선수는 분명 우리의 영웅이다. 영웅이 대접받는 세상이 와야 할 터인데 우리의 사정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지난 마스터스 골프 대회 우승을 통해 멋지게 부활한 타이거 우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메달(Medal of Freedom)’을 받았다. 자유 메달은 미국 시민으로 최고의 영예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멋진 상으로 골프 선수로는 역대 4번째, 운동선수로는 33번째 수상자가 됐다. 메달을 시상하는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즈를 “진정한 전설로 골프의 변혁과 새로운 수준의 독주를 이룬 비범한 선수, 미국인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준 골퍼”라는 극찬을 했다.
우리에게도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이 있었다면 이상화 선수가 그 대상이 됐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영웅에게 대접이 소홀치 못한 나라다. 나라를 구한 것도 영웅이지만 나라를 살리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 것도 바로 영웅의 조건이 될 수 있다.
미국의 Ball Park(경기장)나 공원, 그리고 학교에 가면 많은 영웅의 동상이 존재한다. 그들은 영웅을 존경하고 그들을 본받고 그들처럼 되고 싶은 강한 소망을 갖게 하려고 동상을 세워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만든다고 한다.
영웅이란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대를 이끌며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고 제자리에서 빛을 발하며 정북향의 방향을 제시하는 북극성 같은 존재다. 우리가 따라 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영웅의 존재야말로 이 시대의 경쟁력이 되는 우리의 방향성인 것이다. 특히 크고 작은 경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 속에서 나를 대신해 악당을 물리치고 완벽한 승리를 만들어 내는 영웅이야말로 우리의 롤모델인 것이다.
영웅이 되는 조건들을 보면 첫째, 절대 경쟁자 악당이 존재한다. 둘째, 지옥이나 절대 악조건에서 싸움에서 벌어진다. 셋째,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노력으로 승리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의 영웅 이야기, 즉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도 영웅의 삶이 될 수 있는 조건들이 많이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은 보통 영웅을 발굴하고 기억하는데도 탁월하다. 거리나 도로명 동상에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든 한 줄기 빛이라도 찾아내고 그것을 끄집어내서 영웅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사촌이 집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의 속담처럼 우리는 영웅 만들기에 참 인색하다. 내 주변의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세상이 우리 사회를 더욱 밝게 만든다.
머라이어 캐리의 ‘HERO’ 노래 가사에 보면 “당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영웅이 있다”라는 가사 내용이 있다. 내 안의 영웅 DNA와 콘텐츠를 개발하고 위대한 영웅도 작은 영웅도 발굴하고 만들어 가는 세상. 이것이 정말 살맛 나는 세상 아니겠는가.
김도균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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