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반복된 ‘방문 날 삼성 수사’
권력과 기업 간의 불신 초래
文 정부 기업觀 명쾌해져야
눈에 띄는 앵글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이 함께 있다. 둘 다 환히 웃는다. 첨부된 기사도 정스럽다. “원대한 목표 설정에 박수를 보내며 정부도 적극적으로 돕겠다” “(대통령이) 당부하신 대로 확실히 1등을 하도록 하겠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행사장이다. 비메모리 분야 도전을 위한 선포식이다. 1등 기업이 세계에 던진 당찬 포부다. 대통령이 이 의지에 힘을 실어줬다. 더 없는 기업프렌들리 모습이다.
그런데 삼성은 웃지 못한다. 전날 삼성 임원 등 둘이 구속됐다. 분식회계를 했다는 혐의다. 수사의 최종 목적지는 이재용 부회장이다. 삼성의 승계 과정이 타켓이다. 그룹이 발칵 뒤집힐 만한 일이다. 이런 수사가 하필 29일 이뤄졌다. 대통령 삼성 방문 하루 전이다. 삼성 주변에선 다 알고 있던 방문이다. 삼성 간부들은 일정표에 ‘VIP’라 적어놓기까지 했다. 어찌된 택일(擇日)인가. 여기에 우리가 모르는 속내라도 있는건가.
괜한 억측이라 할 게 아니다. 한 두 번이 아니다. 작년 9월 9일,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만났다.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에서다. 바로 그날 검찰이 삼성전자 사장 집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같은 달 16일 두 번째 만남이 공개됐다. 대통령 방북에 이 부회장이 동행한다는 발표였다. 이번에도 하루 뒤 검찰이 삼성에버랜드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제 대통령이 삼성전자를 방문했다. 역시 검찰이 삼성 계열사 임원들을 잡아들었다.
그새 삼성엔 공식이 생겼다. ‘부회장이 대통령 만나면 검찰 수사 들어온다.’ 함께 정리된 추론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계와 떨어질 수 없다. 노동계의 변함없는 목표는 삼성이다. 무노조 삼성의 완벽한 접수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삼성은 일자리뿐이다. 방문과 격려도 오로지 일자리에 국한한다. 진심에서 가까워질 수 없다. 그 증거가 때마다 등장하는 검찰 수사다-.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나올법한 추론이다.
대기업 다잡기, 물론 우리만 이런 건 아니다.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의 기업 닦달이 어지간하다. 할리데이비슨이 지난해 이런 발표를 했다. “일부 생산 시설을 미국 밖으로 옮기겠다.” 그러자 트럼프가 트윗으로 협박했다. “미국 밖으로 나가면 전에 경험하지 못한 세금을 안겨주겠다.” 2017년 도요타에도 그랬다. 멕시코에 공장을 짓겠다고 밝히자 바로 협박했다.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막대한 국경세를 내야 할 거다”.
우리와 다른 건 분명한 목적이다. 기업 닦달의 목적을 미국인이 다 안다. 국민에 줄 일자리 창출이다. 할리데이비슨도 그래서 붙잡았고, 도요타 공장도 그렇게 끌어들였다. 그 결과로 미국 일자리는 폭증했다. 지난 4월 고용만 25만명(비농업부문)이라는 전망이 나왔다(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분석). 1월 고용도 31만2천명이었다. 우리의 기업 다루기도 그런가. 목적이 일자리에만 있나. 많은 국민이 그렇게만 보지 않는다.
A는 전(前) 대기업 임원이다. 얼마 전 퇴사했다. 많이 편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대화가 시원 시원하다. 권력 얘기에도 이제 멈칫대지 않는다. “SK 반도체 입지를 정부가 결정해요? 장관이라는 사람이 ‘면밀히 검토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해도 되나요.” 이런 말도 한다. “작년 인도 삼성 공장 준공식은 삼성의 잔치죠. 그런데 청와대가 ‘우리가 이재용을 초청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주객이 바뀐 말인데 언론은 또 그대로 쓰더군요.”
결국에는 신뢰의 문제다.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환하게 웃었으면, 그 웃음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으면, 그 약속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투자를 말했으면, 그 계획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했으면, 그 약속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이게 없다. 그 책임의 절반이 권력에 있다. 한자락 깐 듯 도무지 알수 없는 이 권력의 기업관(企業觀)말이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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