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고성ㆍ속초ㆍ강릉ㆍ동해ㆍ인제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민가, 숙박시설, 사업장, 도로 등을 덮치면서 전 국민의 가슴을 졸이게 했다. 삶의 터전은 화마에 산산이 부서졌고 집, 작물, 농기계, 사업장을 잃은 주민들은 망연자실했다. 산불 공포와 트라우마는 평생 주민들을 괴롭힐지도 모른다.
재난으로부터 생명, 국토를 보존하려면 예방, 대비, 대응, 복구 및 회복 등 물리적ㆍ비물리적 대책이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는 강원 산불 피해지역인 5개 시ㆍ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함에 따라 지원이 확대될 예정이다. 피해주민들에게 견디기 힘든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삶의 터전으로의 기능을 복원하기 위한 능력인,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높일 방안들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에 힘쓰는 것이다. 기후조건, 적은 강수량과 강풍 등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자연적 원인 탓에 대규모 피해를 막는 데 한계가 있었다. 화재 발생과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양간지풍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산림정책 및 도시계획 등 근본적인 예방책이 필요하다.
다가오는 16일은 세월호 5주기다. 그 당시를 복기해보면 정치권의 관심은 정치적 유불리였고, 일부 언론은 참사에 대한 원인분석보다는 천문학적 인양비용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우리는 안전에 둔감했고 재난안전 책임자는 구조에 소극적이었다. 2019년 국회는 여전히 정파의 이익이 우선이고 시민의 생명, 인권보다 비용과 효율을 강조한다. 산불이 재난 수준으로 번지는 상황에서도 국가 위기대응 총책임자인 정의용 안보실장을 국회에 붙잡아뒀다. 지난해 강원도 소방본부는 강풍에도 뜰 수 있는 대형헬기와 산불 전문 진화차 등 특수장비 확충을 위한 총 사업비 중 50%인 135억 원을 국비에서 지원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예결위에서 반영되지 않아 예산 확보가 무산됐다. 정책과 입법결정자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낮은 감수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소방자원 동원명령에 따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강원도로 집결했다. 820대의 소방차가 동원됐고 소방청, 산림청, 군과 경찰 등 1만여 명이 구조활동을 펼치는 등 단일화재로는 최대의 규모다. 비용을 먼저 따졌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깨비불의 빠른 이동과 화염으로 휩싸인 상황에서도 동네 주민들은 이웃에게 연락을 취하며 함께 피신했다. 재난 대피 문자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연대 정신, 먼 곳에 있는 가족들의 빠른 대응이 더 많은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시민의 안전 문제는 비용과 효율보다는 생명과 인권, 정쟁이 아닌 초당적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일촉즉발의 화마의 위기에도 이웃을 챙긴 주민들과 화마를 온몸으로 막아낸 일선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의 생명, 연대의 가치를 헛되게 하지 마라.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