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하면서 주민의 손으로 시·군의원이 선출됐다. 이후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통해 지방자치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그리고 2019년 지방의회는 오늘도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더디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는 세계가 주목할 만한 압축성장을 이뤘지만 그로 인해 중앙과 지방 간 불균형, 지역 간 경제적·사회적 격차라는 심각한 과제를 안게 됐다. 급격한 사회변화와 다양해진 시민들의 목소리로 인해 종전과 같은 중앙집권적, 하향식 행정으로는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21세기 신성장동력은 주민의 힘에 달려 있다. 우리 사회는 이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고 주민의 힘을 기반으로 지역주도 성장을 도모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방분권의 정착과 지방자치의 실현은 이제 역사적 과제이자 시대적 사명이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자치분권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움에 따라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의 ‘자치분권 종합계획’에서도 주민주권 구현을 천명하고 있다. 주민이 지역의 주인이며 모든 권력은 주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인 주민주권 구현을 추진전략으로 내세운 것을 보면 우리 사회도 이제 풀뿌리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30년 만에 추진되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는 인구 100만 이상의 대도시만 특례시로 지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인구 수 기준에 따르면 성남시 현재 인구 수는 96만 명에 그쳐 특례시 지정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올해 예산규모가 3조 원을 넘어 기초자치단체 중 유일하다. 도내 민원 1위 도시이자 인근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유동인구와 거주 외국인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행정수요가 140만 명에 육박한다. 현재 성남시는 광역시에 버금가는 행정적·재정적 역량을 갖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갈수록 행정수요는 급증하지만 제한적인 사무권한의 한계로 시민들의 생활불편은 증가하고, 지역경쟁력 향상을 위한 수많은 노력도 발목을 잡히는 현실이 성남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하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인구 수는 생활여건과 도시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유동적인 수치인데 현 시점의 인구 수를 기준으로 특례시를 추진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자 근시안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금 역차별을 토대로 또 다른 사회적 갈등과 불평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특례시 제도와 유사한 지정도시제도가 있다. 일본은 1980년대까지 인구 수 기준으로 정령시를 지정했지만, 2000년대부터는 지방분권개혁에 발맞춰 지역의 산업·문화·교육 등 중추관리기능을 기준으로 정령시를 지정하고 있다. 정령시로 지정되면 일부 광역사무를 제외하고 권한을 대폭 이양받아 광역지자체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이미 오래전 인구 수 기준을 폐지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인구 수 기준으로 특례시를 지정하는 것은 오히려 지방자치분권을 역행하는 개탄스러운 일이다.
과연 지금 중앙정부가 가려고 하는 길이 진정한 주민주권 실현을 위한 길인지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지방자치가 부활된 이래로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과 역량을 쌓아왔다. 중앙정부에서는 커져가는 지역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주기를 바라며,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성숙한 지방자치의 근간이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박문석 성남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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