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쓰면 안 될 표현 ‘관행’
朴관행·文관행, 국론도 분열
촛불, 관행과의 단절 아니었나
자르는 순서가 있다. 제일 먼저는 사자(使者)다. ‘위의 뜻’이라고 전한다. 그래도 버티면 감사(監査)다. 서류를 왕창 빼앗아 간다. 또 버티면 신상털기다. 법인 카드 내역까지 들춘다. 목욕탕 때 민 돈도 다 깐다. 그래도 버티는 독종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쓰는 무기는 망신주기다. 언론에 슬쩍 흘린다. 넘겨받은 언론이 정리를 시작한다. 이쯤되면 천하의 몹쓸 인간이 된다. 너덜너덜해지고 결국 사표를 쓴다. 흔히 봐 왔던 ‘전임자 자르기’다.
박정길 판사가 잘 봤다. 산하기관 자르기는 관행이다. 어느 정부나 그랬다. 출범과 동시에 자르기 시작했다. 매번 던지는 화두는 통치철학이다. ‘새 정부의 통치 철학과 안 맞는다’. 그 판단도 권력이 한다. ‘안 맞는다’고 하면 끝이다. 어차피 정신의 영역이다. ‘잘 맞는다’고 증명할 재간이 없다. 그리곤 순서대로 간다. 사자가 통고하고, 감사에 착수하고, 신상문제 털고, 언론이 망신준다. 박 판사는 환경부도 그런 관행이라고 했다.
그럼, 박근혜 블랙리스트는 어땠나. 출범과 함께 예술계를 조였다. 명단을 만들어 돈줄을 막았다. 그때 기준 삼은 화두가 통치이념이다. ‘새 정부의 통치 이념과 안 맞는다’. 이 역시 정신세계다. 박 정권이 ‘안 맞는다’고 결정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잘 맞는다’고 반박할 방법은 없었다. ‘통치 철학’이 관행이면, ‘통치 이념’도 관행이다. 그런데 그때 법원의 처분은 달랐다. 박근혜 문화부는 나쁜 죄인이라 했다.
박정길 판사가 든 관행이 또 있다. 채용 혐의다. 청와대가 챙긴 박모씨가 있다. 환경 공단 상임 감사직을 지원했다. 답안재료를 미리 건네 줬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꼬여서 떨어졌다. 서둘러 산하기관 회사의 대표를 줬다. 그린에너지개발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GS, 코오롱과 공동 출자했다. 법률상 민간 회사다. 어엿한 이사회가 있었을 텐데. 어려움 없이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이것도 박 판사의 논리에서는 ‘관행’에 포함된다.
그럼, 박근혜 각료들은 어땠나. 안종범 수석이 사람을 취직시켰다. KT 전무에게 압력을 넣었다. 관행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죄로 판결했다. 시중 은행의 채용 비리가 있었다. 시중 은행장 등 38명이 기소됐다. 은행 측은 민간 기업의 인사권이라고 주장했다. 경영을 고려한 관행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냉정했다. ‘지원자에게 좌절과 배신감을 주고 우리 사회의 신뢰를 훼손했다’고 했다. 은행장을 법정에서 구속했다.
법원이 둘인가. 둘인가 보다. 하나는 관행을 인정한 박정길 법원이다. 김은경 장관을 풀어준 논리다. 다른 하나는 관행을 인정 안 한 非박정길 법원이다. 박근혜, 은행장들을 처벌한 논리다. 이걸 본 국민도 갈라섰다. 박정길 논리가 옳다는 국민과 다른 논리가 옳다는 국민이다. 답을 찾을 일은 아니다. 그럴 능력도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가지 토는 달아둘까 한다. 박근혜 관행 유죄와 김은경 관행 기각. 하나는 틀려야 법이다.
-상인 쿨리가 길을 간다. 짐꾼, 길잡이와 출발했다. 도중에 짐꾼과 친해진 길잡이를 자른다. 짐꾼이 앙심을 품고 있다고 여겼다. 한밤 중 짐꾼이 쿨리에게 물통을 건넨다. 쿨리는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놀란다. 순간 총을 쏴 짐꾼을 죽인다. 재판은 상인 쿨리 편이다. ‘짐꾼의 선행은 예외다. 방어하려고 쏜 것이 관행이다’.- 희곡 ‘예외와 관습’이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작가 브레히트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잘못된 관습과 제도에 저항하라!
박정희ㆍ전두환 정권이 그냥 두지 않았다. 공연해선 안 될 금극(禁劇)으로 묶었다. 이유가 뻔하다. 관습과 질서에 도전할까 두려워서다. 2017년 박근혜 몰락이 갖는 법률(法律)적 의미도 거기 있다. 우리 법 역사의 ‘브레히트적 전환’이었다. 그릇된 관행-인사 횡포ㆍ특활비 수수 등-에의 단죄였다. 이 정부가 신봉하는 촛불 정신, 그 근본도 결국은 관행과의 결별이다. 그런데 그게 부활했다. 하필, 촛불의 정리자였던 법원에서 부활했다.
도주 우려 가능성? 없다고 봐도 된다. 증거 인멸 가능성? 없다고 해도 된다. 구속 영장? 얼마든지 기각해도 된다. 하지만 ‘관행’은 쓰지 말았어야 했다. 관행을 기각 사유로 들어선 안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그날부터 설명이 안 된다. 대한민국 법률이 설명 안 되고, 앞서 행한 재판이 설명 안 된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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