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빨래로 표현한 사람들의 아픔
하느님의 빨랫줄
- 구옥순
아침에는 해님을 널었다가
저녁에는 달님을 널었다가
엄마, 아빠, 내 옷 빨아
말리는 빨랫줄처럼
노예로 팔려간 톰 아저씨 마음도 널고
시리아 난민 아이 쿠르디 젖은 신발도 널고
이산가족들 땅 꺼지는 한숨도 널고
하느님도 빨래를 하시나보다. 그것도 손빨래를 하시나보다. 빨랫감을 물에 담갔다가 말끔히 때를 뺀 뒤 탁탁 털어서 빨랫줄에 너시나보다. 그런데 하느님이 하셔야 할 빨랫감은 참 많기도 하다. 저 하늘의 해님, 달님은 물론 노예로 팔려간 톰 아저씨 마음도 빨랫감이며 시리아 난민 아이 쿠르디의 젖은 신발까지 가져다 빨고 계신다. 어디 그뿐인가. 둘로 갈라진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의 한숨도 빼놓지 않고 빨고 계신다. 참 고생깨나 하고 계신다. 이 동시는 하느님의 손빨래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쯤 되면 동시가 초등학교 교실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지구’라는 커다란 운동장에까지 발을 뻗었다. 동시 영역의 확장이자 아동문학의 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 아빠, 내 옷 빨아/말리는 빨랫줄처럼’. 땟자국이 말끔히 빠진 빨래들이 빨랫줄에 널려 바람에 춤을 추는 것을 보는 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빨래들이 안고 있던 아픔의 자국들이 말끔히 가신 것을 바라보는 건 또 얼마나 가슴 서늘한가! 세탁기가 없던 가난한 시절에 손빨래로 하루해를 냇가에서 보내던 우리들의 어머니들도 다 하느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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