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친박 감별사’까지 다시 등장한 한국당 全大

국민적 심판인 탄핵을 부정하고 ‘도로 박근혜 당’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태생적 불치병인 친박-비박 싸움을 넘어서 소위 ‘친박 감별사’까지 다시 등장하는 등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화두는 ‘박근혜’에 붙잡혀 있는 형국이다.

자유한국당 유력 당대표 후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앞다퉈 이야기하고 있다. 황교안 전 총리, 홍준표 전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유력 후보들은 모두 율사 출신이다. 이른바 ‘친박’ 표심을 노렸겠지만, 실형 선고가 내려지고 재판이 진행되는 피의자이기에 법적으로 석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속임수라는 비판은 당연하다. 특히나 탄핵 직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거나 침묵했던 인사들이 선거 때가 돼 사면을 거론하고 있으니 그 행위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탄핵 2년 만에 자신감을 되찾은 건지 ‘친박 감별사’도 등장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 유영하 변호사가 한 방송에서 ‘친박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 대해 ‘친박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구속 수감 중인 최경환 의원과 대한애국당의 조원진 의원을 이어 제도권 밖에서 새로운 감별사가 등장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교도소 안에서 보내는 메시지에 따라 당 대표의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국정농단과 헌법 유린의 책임을 망각하고 ‘박근혜’를 소환하고 있는 현 상황을 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친박-비박 싸움의 본질은 패거리 정치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도 패거리 정치라는 정치 구태였다. 패거리 정치가 진화해 ‘친박’에서 ‘진박’으로, 공천과정에서 소위 ‘진박감별사’까지 등장한 결과가 박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파면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반성은 고사하고 지지자를 중심으로 탄핵 7적을 지목했다. 지난해에는 친박계 의원들과 친박 성향의 당원들이 ‘탄핵 백서’를 작성, 공개한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급기야 ‘탄핵 무효’ 주장까지 나왔다.

외국의 경우 전당대회는 유명한 연예인이나 스포츠계 인사 등의 지원연설이 국민적 관심이 되기도 하고 이름 없는 새내기 정치인들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유명인사로 떠오르기도 한다. 이처럼 전당대회는 당의 비전과 가치, 그에 따른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정치 행사다. 당을 대표하는 인물을 선출하는 당의 축제이자 이념과 가치, 비전을 담은 정강정책을 당원들에게 승인받는 자리다. 그런 행사에 보수정당을 추구하는 당의 대표가 되고자 하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철학과 비전, 정책은 홀대하고 ‘박근혜’만 소환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비정상인지는 그 자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보수의 위기는 외부 세력의 공세로 촉발된 게 아니다. 보수 내부의 성찰과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보수를 재건하고자 한다면 국정농단에 대한 반성과 ‘계파 보스정치’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당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헌법적 기본 원리 가운데 가장 우선인 주권재민의 원리에 따라 시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어떤 보수적 가치의 이념을 담을 것인지, 강령과 정책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이뤄지는 전당대회가 돼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금에 머물러 있다면 몰락을 재촉하며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다시 묻는다. 시간을 탄핵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느냐고.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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