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끝난 일’ 토론 금기 천명
진보 측도 “토론조차 어렵다”
소신 밝힌 송영길, 죄인 취급
이치선 변호사는 진보진영 인사다. 1985년 미문화원을 점거했다. 그 속에 ‘서울대 물리대 학생’이다. 그 후로 고된 인생을 살았다. 징역을 살았고, 제적과 복학을 거듭했고, 학원 강사로 버겁게 살기도 했다. 그래도 진보에서 비켜선 적은 없다. 행로를 바꿔 변호사가 됐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돈 안 되는 인권 변호가 주 업무다. 그토록 열망한 진보 정권이 들어섰지만, 그는 다른 일에 열심이다. ‘지구를 살리자’는 대기환경 운동이다.
‘수억 년 동안 석탄, 석유의 형태로 지하에 격리되어 있던 탄소와 수천만 년간 메탄하이드레이트 형태로 봉해져 있던 탄소가 동시에 대기로 주입되는 사태는 지구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신속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2018년 ‘녹색평론’ 기고문 중에서). 탈원전에도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탈석탄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그가 말했다. “탈원전이 이데올로기처럼 됐어. 주장하려 해도 토론하기가 참 부담스러워”.
상가(喪家)에서 들었는데, 이 말이 현실이 됐다. 송영길 의원이다. 역린 건드린 죄인이 됐다. ‘원전 건설 재개’ 발언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은 장기간 공존할 수 밖에 없다”며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재개 필요성을 주장했다. 청와대가 반박했다. 전례 없이 단호했다. “이미 끝난 얘기다” “입장에 변함없다”. 당(黨)도 청(靑)을 따라 갔다. ‘돌출 발언’ ‘신중치 못한 처신’ 등의 비난을 쏟아냈다. 급기야 친문(親文)에의 도전으로 몰렸다.
이게 이렇게 노(怒)할 일인가.
2019년은 마스크와 함께 시작됐다. 새해 하늘을 미세먼지가 뒤덮였다. 태양을 가린 먼지가 대낮에도 뿌옇다. 2012년, 세계에서 대기 오염으로 죽은 사람이 370만명이다. 2013년, WHO는 미세먼지를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2015년, 미국심장협회(AHA)는 심혈관질환 사망 첫째 원인을 미세먼지로 꼽았다. 더는 학자들의 가설이 아니다. 예민한 의사들의 과(過)한 권유도 아니다. 심각성이 증명된 정설이고, 흡입하면 죽는 독극물이다.
정부도 비상이다. 대책 발표에 여념이 없다. 그 대책 중에 석탄발전조치가 있다. 화력발전소 출력을 80%로 묶는 명령이다. ‘이렇게 하면 미세먼지 2.4톤 줄일 수 있다’는 설명까지 붙였다. 자연스레 탈원전 토론이 시작됐다. 26% 원전비율을 0%로 만들겠다는 정책이다. 당장 그 대체 에너지원을 찾을 수는 없다. 당분간 46.2%의 석탄발전을 돌려야 한다. 탈원전이냐 탈석탄이냐의 딜레마다. 그래서 나온 게 믹스ㆍ균형 정책이다.
송 의원 말도 이거다. 뭐가 잘못됐나.
자신감이 쌓이면 확신이 된다. 확신이 쌓이면 이데올로기로 간다. 지금 탈원전이 그렇다. 자신감ㆍ확신을 지나 이데올로기까지 와 있다. 토론 없이 찬성해야 하는 성역이다. 누구든 토를 달면 적(敵)으로 밀려난다. 집권 여당의 중진 의원이든, 평생 진보에 몸바친 투사든, 정권을 떠받쳐온 시민단체든 따지지 않는다. 청와대가 ‘토론 말라’고 못 박아놨다. “공론화 위원회 논의를 거쳐 정리가 됐다…논의가 필요한 시점은 아니다”.
탈원전, 이게 뭔가. 이게 뭐라고 토론도 못 하게 하나.
감옥 간 이명박 대통령의 고집은 대단했다. 온갖 반대에도 ‘4대 강’을 밀어붙였다. ‘국민과의 약속을 바꿀 수 없다’는 명분을 댔다. 그때 유시민씨가 던진 일침이 있다. “그게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바꾸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도 국민과의 약속이다. 역시 바꿀 수 없다는 명분을 말한다. 유시민의 일침을 지금 쓰면 이렇다. “이게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일 큰 잘못은 ‘바꾸지 않는 것’이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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