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자유를 훼손하는 자유경쟁

어제까지 서로 경쟁하던 재벌 총수들이 의기투합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에게 반하는 진보당 후보를 저지하려는 꿍꿍이속이다. 이 청년 후보는 빈부격차를 줄일 뿐 아니라 유전무죄의 불공정성을 타파하고 독점을 규제해야 한다며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맨손으로 일궈 놓은 거대제국이 자칫 하루아침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독점금지법이 제정된 지 오래지만 사법부 판사들이 기업에 우호적이라 한 번도 처벌된 적은 없었다. 우선 보수당에서 재벌 입장을 적극 대변해 줄 인물을 물색해 대선주자로 만들었다. 선거자금을 각출했는데 진보당 후보에 15배는 족히 될 두둑한 금액을 후원했다. 그래도 미덥지 않아, 언론을 되는대로 매수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데 직접 나섰다. 직원들에게, 규제강화로 회사가 문 닫으면 모두 실업자 신세가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ㆍ경ㆍ언 유착을 다룬 한편의 한국 드라마 같지만 미국 실화다. 1896년 대선에서 석유왕 록펠러, 금융왕 모건, 철강왕 카네기도 이 모사에 가담했다. 석유, 전기, 기차, 철강을 중심으로 전 산업이 급속히 성장했지만, 산업발전의 결실은 소수 부자에게만 집중되었고 빈부격차가 극심해 서민경제는 파탄지경이었다.

36세의 탁월한 언변가였던 민주당의 브라이언이 이런 사회병폐를 부각시켜 민중을 결집시켰다. 그는 총 29만㎞를 달려, 무려 600번의 미대륙 순회연설을 통해 청중을 사로잡았다. 은(銀) 화폐 사용을 공약하며 ‘황금십자가에 인류를 못 박지 마라’는 명언으로 빚에 쪼들려 살아가던 서민을 매료시켰다. 금본위제에서 부를 축적해 온 금융자본가에게도 브라이언은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브라이언은 석패했다. 대기업과 은행을 등에 업고 공화당의 맥킨리가 25대 대통령이 된다. 규제는 완화되고 독점재벌은 날개를 달았다. 출혈경쟁으로 경쟁자를 내몰아 파산시키거나 흡수해 더욱 몸집을 불리는 독점이 자행되었다. 주요 산업의 80%가 300여 개의 독점기업에 의해 장악되었다.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공화당 내에서 반기업적 소신이 뚜렷했던 루즈벨트를 유명무실한 부통령에 앉혀 무력화시켰던, 나름 꼼꼼한 계략이 패착이었다. 분노에 찬 퇴출노동자가 쏜 총탄에 맥킨리가 사망하자, 루즈벨트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것이다. 루즈벨트 정부는 묻혀 있던 반독점법을 부활시켜 북부증권회사, US스틸을 해체하고 연이어 40여 개의 독점기업을 제소한다.

루즈벨트는 ‘독점기업 사냥꾼(trust buster)’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건전한 경제구조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독점기업의 과도한 시장지배력을 견제하자, 중소기업과 창업자에게 기회가 열리고 활력과 혁신이 움텄다. 빈부격차 완화로 형성된 강건한 중산층은 역동적인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100년 전 산업화 초기에 겪었던 미국의 성장통에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당시 록펠러의 인식을 아직도 뇌까리는 인사들을 보면 개탄스럽다. 스탠더드오일이 34개 회사로 분리될 때, 그는 독점도 사업역량이라고 항변하며 규제 없는 자유경쟁을 요구했다.

자유의 상반된 개념이 ‘구속’이었던 천박한 독재 시절은 지났다. 자유가 ‘평등’과 상충하는 선진국 문턱에 있음을 자부하자.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언제나 부유층에 힘을 실어 빈익빈 부익부를 야기하고 기회균등, 나아가 타인의 자유까지 훼손했다. 압축성장으로 간과되었던 공정경쟁에 주목할 때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싶다면, 100년 전 미국처럼 지금 묻혀 있는 법이라도 올곧게 집행하라.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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