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다툼과 진통 끝에 명곡이 나온다

1970~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룹 ‘퀸(Queen)’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국내 100만 관객을 훌쩍 넘어서는 등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 퀸에 열광했던 40~50대 팬들에겐 영화 속 짧게 삽입된 곡 하나, 에피소드 하나가 모두 마음을 울린다. 영화를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퀸에 대한 정보나 노래를 모르는 2030세대에게도 ‘보헤미안 랩소디’는 음악영화로서 놀라운 경험을 선물했다. 청년들은 ‘이 음악들이 70~8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니 놀랍다’, ‘밴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왜 퀸을 최고로 꼽는지 알 것 같다’ 등의 감상 후기를 남기고 있다. 이 중에서도 ‘어느 한 곡도 비슷한 곡이 없다’라는 후기야말로 퀸의 진가를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퀸이 ‘퀸스러운’ 음악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음악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전설적 그룹이 된 데는 4명의 멤버 모두의 치열함이 있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퀸은 사두마차와 같아서 어떤 때는 따로 고삐를 쥐고 방향을 돌리기도 한다. 4명의 개성이 모두 다른데, 어쩌면 그래서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앨범을 만들면서 애들처럼 싸우고 또 싸운다고 한다. 그래서 그룹이 숱하게 깨질 위기도 맞았지만, 영화에서처럼 논쟁을 하는 과정이 오히려 멤버 간 팀워크를 공고히 하는 것이었다니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치열하게 다투면서도 가장 좋은 합의에 이르는 소통방식을 퀸에서 본다. 가장 어려운 방식인 만큼 가장 성숙한 방식이다. 내가 한 것을 마음에 안 들어하고, 나보고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불화 없이 지내려면, 상대의견을 인정해야 하고 내 것을 주장하는 걸 잠시 접어두거나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직지코드’의 우광훈 감독은 “구텐베르크가 정말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낸 사람이 맞냐”는 조금 멍청한 질문에도 유럽의 학자들은 따뜻하게 답해주었다고 한다. 심기를 충분히 건드릴 수 있는 이야기라도 피 터지게 토론하지 않고, 밥도 함께 먹으며 열린 마음으로 토론했는데 그게 아주 좋았다고 한다.

우리사회는 현재 수많은 사안을 가지고 진통 중이다. 대체 복무에 대한 찬반, 낙태금지에 대한 찬반, 연대하는 여성들의 힘 있는 목소리 속에서 무수한 논쟁과 다툼이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지만 아직은 내 말만 하고 상대의 말엔 귀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요원하고 그 과정이 산 넘어 산처럼 아주 험난하고 끝이 안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입 있는 사람은 모두 한 마디씩 하느라 합의는커녕 시끄럽고 정리 안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또한 성숙한 커뮤니케이션 문화로 가는 한 과정이다. 긴 진통 끝에 합의를 보고 법이 만들어진 과정은 과거 서구 사회에서도 똑같이 진행되어온 것이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를 누려온 역사가 서구에 비해 턱없이 짧은 우리는 정치권력이나 경제 권력이 제시하는 한 가지 시선에 매몰돼 다른 것을 볼 생각도 못 했다. 디지털이 이끈 정보통신의 발달로 사람들은 눈을 떴다. 합의에 이르는 건강한 토론, 건강한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꽃피어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우리는 그 길목에 있다. 이런 과정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전미옥 중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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