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원으로 살면서 시간이 늘 부족함을 느꼈다. 민원 해결과 현장 방문은 기본이다. 주민을 위한 조례도 만들어야 하고, 주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행정사무감사에 내년 예산안 심사도 해야 하니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경기도 한 해 예산이 2018년 기준으로 경기도교육청을 포함해서 40조 원 규모다. 의원 1인당 약 2천800억 원의 예산이 정책의 취지대로 잘 쓰이는지 감시ㆍ감사해야 하며, 합리적인 대안도 내놓아야 한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제9대 때 조례 제ㆍ개정이 총 1천311건이었고, 이 중에서 의원발의가 1천071건으로 1인당 8.4건이었다.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광역의회 의원의 조례 발의율이 지난 2007년 29.8%에서 2017년 59.8%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의회 의원 조례 발의율은 이보다 높은 81.7%다.
국회의원은 1인당 인턴을 포함해서 9명의 보좌인력이 있고, 입법과 예산 등 전문 지원조직도 탄탄하다. 그러나 경기도의회를 포함해 지방의회 의원은 혼자서 고군분투한다. 정책지원 전문인력도 없고, 의회사무처 직원의 인사권도 집행부의 수장인 단체장에게 있다.
‘강(强) 집행부, 약(弱) 의회’라는 자조 섞인 말에서 보듯이 집행부를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야 할 지방의회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 이런 구조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지만 27년째 헛바퀴였다.
그러나 요즘 달걀로 바위를 깨는 듯한 기적을 경험하고 있다. 지난달 말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단체장에게 속해 있던 지방의회 소속 직원 인사권을 시ㆍ도부터 단계적으로 독립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자치입법과 감사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정책지원 전문인력 제도’의 도입도 추진하겠다”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울컥했다. 전국 시ㆍ도의회가 연대해 무던히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행정안전부는 지방의회 운영 자율화와 주민발안제도 도입, 주민감사 청구 인구 하향 조정 등 지방자치법을 30년 만에 대폭 개정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의회 의원 후보자의 후원회 설치를 허용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대한 선관위 의견도 국회에 제출됐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법 개정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정부는 현재 지방분권 가이드라인만 제시했다. 세부적인 사항을 포함해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많아 보인다. 국민의 기본법인 헌법에 자치분권이 담길 수 있도록 개헌의 불씨도 다시 살려야 한다.
지방의회는 주민의 대의기관이며, 이러한 변화에 막중한 책임을 느낀다. 지방의회는 지방자치의 출발점이며, 지방의회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국민 존중이라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길목에서 이제는 주민이 나침반이 돼줄 차례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의 주체는 바로 주민이다. 주민이 가리키는 방향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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