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왕좌에 앉은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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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큰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전시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다리도 아프고 작은 글씨의 작품설명을 읽느라 눈도 피곤해진다. 그래도 전시된 작품은 모두 보고 싶은 욕심에 동선이 커져서 마지막에는 자세히 보지도 못한 채 나오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아쉬움을 배려한 것인지 특별전 이외의 상설 전시는 가장 유명하고도 중요한 작품을 관람자의 주요 동선에 배치한다.

 

방문연구로 기약된 1달을 알차게 보내려고 지난 주말에는 라이프찌히 조형예술박물관을 방문했다. 1층 정면의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큰 홀의 한가운데에 사람 키의 2배 정도 높이의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 남자가 아주 호화로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데, 그의 발밑에는 큰 독수리가 날개를 모으고 있다. 벗은 남자는 담요로 하반신 일부만 덮고 있다. 가슴과 어깨, 오른쪽 넓적다리의 근육이 드러나 보이고 두 손은 주먹을 쥔 채 오른쪽 무릎 위에 놓여 있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독수리는 발톱으로 바위를 움켜잡고 있다. 청동의자는 팔걸이가 화려하고 사람의 얼굴들을 새긴 부조석상들이 붙어 있다.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철 왕좌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이 남자는 올림포스 신전에 앉은 신 같았다. 독수리가 있으니 제우스일 것이다. 그런데 수염을 기른 제우스와 얼굴이 달랐다. 머리칼은 부스스하고 눈은 부리부리한데 코는 주먹코에 입은 꼭 다문 채 입 꼬리가 아래로 처져 있다.

 

한국 석굴암 부조에 있는 금강역사를 닮았다. 베토벤이었다. 조각가는 막스 크링거(Max Klinger)였는데 그는 왜 베토벤을 제우스처럼 조각해 신격화했을까 생각해 봤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베토벤은 어려서부터 음악에 재능이 두드러졌는데 부모를 일찍 여의자 피아노 연주자로 가족을 부양했다. 작곡자로서도 인정받았으나, 28살 때 귓병으로 청력을 잃고 32살 때에는 자살하려고 유서까지 썼다.

 

고난과 번민을 딛고 작곡에 매진해 하이든, 모짜르트의 뒤를 이어 자신만의 예술을 창조했다. 다문 그 입과 주먹 쥔 두 손은 역경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표현한 것 같았다. 청력을 잃고도 굴하지 않고 훌륭한 음악을 작곡한 인간승리를 기리고자 조각가는 그를 ‘신의 영역’에 앉혀놓은 것이 아닐까?

 

흔히 베토벤을 악성(樂聖)이라고 하니까 성인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를 넘어 이제는 신으로 여긴 것이다.

 

베토벤은 유서에 신을 향해 ‘너무도 가혹하십니다’라고 썼다는데, 가혹한 처사의 신도 이겨낸 인간이고 보니 이 정도로 신격화된 동상이 안성맞춤 같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가 작곡한 138개가 넘는 작품들이 듣는 이의 마음과 정신을 고양시키는 경우가 흔해 인간을 좌지우지하는 예술의 신으로 여길 만했다.

 

관람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유럽식 건축물의 열린 창으로 서툰 솜씨의 플루트 곡조가 흘러나왔다. “미미파솔 솔파미레 도도레미 미레레…” 걸음을 멈추고 합창교향곡의 그 곡조가 끝날 때까지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서서 들었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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